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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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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승려
지역 : 기타
출처 : 삼국유사 (권4)
내용 :원효는 설씨로 아명(兒名)이 서당(誓幢)이었고, 집 이름이 신당(新幢)이었으며, 진평왕 39년에 태어났다. 원효는 율곡 바라수(婆羅樹)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남편의 옷을 걸어 가리고 그 아래에서 낳았다고 한다. 이 나무의 밤은 좀 이상하여 근처 절에서 주지가 중들에게 저녁밥으로 이 밤나무의 밤 두 개씩만 주었다. 종들이 관청에 주지를 고발했는데, 관장이 조사해 보니 그 밤은 한 개가 한 그릇이나 되었다. 원효는 설총을 낳아 이미 계율을 어겼으므로 승복을 벗고 속복으로 바꾸어 입고 호를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했다. 우연히 광대가 재주를 부리는 기이한 큰 박을 얻어, 그 형체를 본뜬 기구를 만들어 ‘무애(無)’라 이름 붙였는데 화엄경의 “죽고 삶에서 초월함이 무애이다.”라는 것에서 따온 말로, 원효는 이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춤추고 노래 불렀다. 원효가 부르고 다닌 노래가 <무애가>인데 세상에 널리 퍼졌다. 원효가 각처를 돌면서 노래하고 춤추어, 대중에게 불교를 이해하고 가까이하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원효가 분황사에 거처하면서 화엄소를 지었는데, 제40 회향품에서 그치고 있다. 또 해룡의 인도로 삼매경소를 지었는데,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사이에 얹어서 <각승>이라 이른다. 사실 이것은 자각과 각타의 2각에 대한 심오한 이론이므로 두 뿔을 상징해 각승이라 한 것이다. 원효가 사망하니, 아들 설총이 원효의 해골을 부수어 뭉쳐 부처를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했는데, 당시 설총이 절을 했을 때 부처가 옆으로 설총을 돌아보아, 지금까지 그 부처는 얼굴을 옆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