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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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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승려
지역 : 영남
출처 : 삼국유사 (권4)
내용 :의상은 김씨로 29세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원효와 함께 요동으로 갔다가 간첩으로 몰려 구금되어 수십 일 고생하고 풀려났다. 진덕여왕 때(650년 경),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중국에 가서 양주 주장 유지인의 도움을 받았고, 곧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智儼)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의상이 지상사(至相寺)에 도착하는 전날 밤 지엄 스님이 꿈을 꾸니, 해동에서 큰 나무가 자라 그 가지가 뻗어 와서 고을을 덮고 나무 위에는 봉이 집을 지었는데, 그 나무 위에 올라가 보니 보배로운 구슬이 빛나고 있었다. 꿈을 깬 스님은 귀인이 찾아올 것을 예감하고 절을 깨끗이 하고 기다렸는데 의상이 나타나서 의상은 지엄 스님의 제자가 되어 수업했다. 신라 승상 김인문과 양도 스님이 당나라에 왔다가 구금되어 있으면서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는 계획을 알고, 의상에게 몰래 연락해 빨리 귀국하여 대책을 세우도록 일렀다. 의상이 문무왕 10년에 귀국해 조정에 이 사실을 알리니 조정에서는 신인종 대덕 명랑법사를 시켜 밀단법(密壇法)을 설치하고 방양(防禳)하여 화를 면하게 되었다. 의상은 문무왕 16년 태백산에 들어가 부석사를 창건했는데 중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중국 승려 현수가 <수현소(搜玄疏)>를 지어서 보내와, 부석사와 함께 열 개의 사찰에 전파했다. 의상이 황복사에 있을 때 제자들과 함께 탑을 도는데, 한걸음 한걸음 걸으니까 계단이 없는데도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석 자쯤 올라간 공중에서 제자들과 함께 탑을 돌았는데, 사람들이 알면 기이하게 여길 테니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의상법사가 당나라 지상사에 있을 때, 이웃에 선율사가 있어서 항상 상제가 내리는 하늘의 공양〔天供〕을 받아서 제를 올리고 있었다. 하루는 선율사가 의상을 초청해 재(齋)를 올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천사의 천공이 도착하지 않았다. 빈 그릇으로 제를 마치고 나니 천사가 천공을 가지고 왔기에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천사는 “고을 입구에 오니 신병이 가득 지키고 있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늦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율사는 의상이 신이한 술이 있는 줄 알았다. 선율사는 늦게 갖고 온 천공을 두었다가 이튿날 지엄과 의상 두 화상을 초청해 다시 재를 올리고 어제의 천사 얘기를 했다. 그러자 의상은 선율사에게, 제석궁에 보관하고 있는 부처님의 40 치아 중 한 개를 내려 보내 주시면 중생제도에 도움이 되겠다고 간청했다. 그래서 선율사가 제석궁에 연락해 불아(佛牙) 1개를 7일 기한으로 이 땅에 내려 보내 주니 이것을 함 속에 넣어 중국 궁중에 모셨다. 하늘의 1일은 인간의 100년이므로 700년 기한으로 내려 보낸 것으로 700년 후에 거두어간다는 뜻이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건국해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니, 이 불아를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버리려 했는데 고려에서 그 뱃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고 이 불아 상자를 얻어와 고려 예종 때 궁중에 모셨다. 고려 고종 19년 강화도 천도 때 불아 상자를 미처 챙기지 못해 분실했다가, 바깥 함이 모두 파손되고 속의 유리함만 다시 찾았다. 뒤에 고려 원종 11년에 또다시 적의 공격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심감 스님이 간수했다가 가져와 봉안했다. 앞서 700년 기한으로 하늘에서 내려 보낸 것이므로, 강화도로 천도한 때가 693년이 되고 700년이 되는 때는 고종 27년 이라 심감 스님이 간수했다가 가져온 것은 이미 불아가 없는 빈 상자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