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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자장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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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승려
지역 : 영남
출처 : 삼국유사 ()
내용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는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소판 벼슬을 지낸 김무림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가의 중요한 관직을 지냈으나 자녀가 없어 우울한 찰나에 우연히 불교를 접하게 되고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되어 그때부터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자식을 꼭 얻고 싶었던 그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음보살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만일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불교의 지도자로 만들겠습니다 " 무림의 이런 간곡한 기도가 통했는지, 자장의 어머니는 별이 품안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 곧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을 선종이라 하였다. 선종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자,세상살이의 번잡함에 염증을 느껴 처자를 버리고 출가했다. 자신 소유의 땅에 원녕사라는 절을 지어 바치고 자신은 혼자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불가에 귀의한 후 스스로를 자장이라 했다. 그는 방안을 가시로 둘러 움직이면 가시가 찌르도록 했고, 머리를 천장에 매달아 졸음을 물리치는 엄격한 계율을 몸소 실천하며 수행에 전념했다. 이처럼 그의 피나는 고행은 계속되고 있을 때 마침 나라에서는 재상 자리가 비게 되었다, 출신 가문으로 보나 여러 면에서 자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물망에 올랐으나 자장은 계속 거절 하였다. 거듭된 거절에 화가 난 왕은 조정의 관리로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자장의 " 나는 차라리 계율을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 하고 백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결국 그의 출가를 인정해주었다. 636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자장율사는 중국 계율종의 본산인 종남산(終南山)과 문수 보살의 주처인 오대산(五臺山)에 머물렀다. 여기서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석가모니가 입던가사 한벌과 바리때 하나, 부처님의 정수리 뼈와 치아사리 등을 받은 자장율사는 643년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후 스님으로서는 최고 자리인 대국통(大國統)에 임명된 자장율사는 전국의 승려들에게 계를 내려 규율을 단속하고, 사신들을 파견하여 지방 사찰을 순회 감독하게 하는 등 대대적인 불교정비에 나섰다. 아울러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국력의 신장과 국론의 통일을 꾀하고, 신라 불국토사상을 전개해 불교의 토착화에 공헌하였다. 자장은 어느 날 밤 꿈속 에 문수보살을 만났다. "내가 곧 그대를 찾아가리라."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자장은 문수보살이 강림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다 떨어진 도포를 입은 한 늙은 거사가 칡으로 엮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는 시자(시중을 드는 스님)에게 말했다. "내가 자장을 만나러 왔으니 가서 알리도록 해라." 시자는 그 행색에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우리 스님을 받들어 모신 지가 오래 되었지만 스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은 누구기에 그런 말버릇으로 스님을 찾는다 말이오." 그러나 거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시자는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그대로 들어가 자장에게 알렸다, 자장은 그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미친 사람인가 보니 ?아 보내라고 일렀다. 시자는 그 거지꼴을 한 거사를 꾸짖어 내쫓았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납을 업신여기는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나를 볼수 있겠느냐." 그러고는 돌아서더니 짊어진 삼태기를 거꾸로 쏟았다. 그러자 그 안에 담겨 있던 죽은 강아지가 튀어나와 갑자기 사자 모양의 의자로 변했다, 그리고 그 거사는 그 사자보좌 위에 올라앉아 광채를 발하고는 사라졌다. 시자는 이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 황급히 스승에게 알렸다. 자장이 그제서야 그 사람이 문수보살의 현신이었음을 깨닫고 서둘러 빛을 따라 남쪽 고개로 올라갔지만 이미 아득히 멀어져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자장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