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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고려 왕씨 용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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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씨 용손

갈래 : 전설
시대 : 고려
신분 : 기타
지역 : 영남
출처 : 어우야담 (381)
내용 :고려의 왕위 계승자는 왼쪽 겨드랑이 밑에 모두 금색 비늘 세 개가 달려 있다. 우왕은 강화도에서 죽고, 창왕은 강릉에서 죽었는데, 모두 겨드랑이 밑에 비늘이 있는 징표가 있었다. 차식(車軾)이 고성 군수일 때, 양사언 장인 이시춘을 만났는데, 당시 나이 70이었으며 늘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내 증조모가 나이 90여 세로 강릉에 살고 있었는데, 증조모 나이 20세 때에 고려의 전왕을 처형한다는 말을 듣고 구경하러 갔었다. 그때 처형 직전에 왕이 사람들에게 옷을 벗고 왼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엽전 크기만한 황금색 비늘을 보여주면서, ‘우리 왕씨들은 본래 용의 자손이기 때문에 왼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이 세 개의 비늘을 가지고 징표로 삼는다.’라고 말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비통해 했다.” 이런 내용의 얘기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공민왕은 아들이 없었으며, 널리 젊고 예쁜 소년들을 뽑아 궁중에 들여놓고 ‘도령(都令)’이라 불렀다. 신돈이 그 왕비들을 통간해 두 아들 우(禑)와 창(昌)을 낳았으므로, 이들은 왕씨가 아니라고 해서 역사서에서는 ‘신우(辛禑) 신창(辛昌)’이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강릉 사람들은 세 개의 비늘을 보고 확인함으로써, 사신들이 거짓으로 쓴 것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권근과 정도전이 ‘이씨 조선’에 아부하느라고 이렇게 난잡한 얘기를 꾸몄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뒷날 사람들은 그 진짜와 가짜를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신숙주와 성삼문이 왕명에 따라 차원부의 《설원기(雪寃記)》를 고찰하고 아뢴 바에 의하면, 김부식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역사서를 쓰면서 정지상의 충정을 덮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고려사》를 보면 정지상의 간악한 행동은 여러 곳에서 일치하게 기술되지 않았다. 사필(史筆)이 모두 김부식에서 나왔으니, 어찌 무언(誣言)이 없다고 하겠는가 역사서의 믿지 못할 것이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