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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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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갈래 : 전설
시대 : 조선
신분 : 학자
지역 : 기호
출처 : 율곡전서 (권33)
내용 :가정 15년(1536) 12월에 이율곡이 강릉에서 출생했다. 앞서 이해 봄에 모친이 꿈을 꾸니, 동해에서 신녀(神女)가 바다에서 나오는데, 옥결 같은 동자를 안고 와 주기에 가슴으로 그 아이를 받아 안았고 임신하여 이율곡을 낳았다. 이율곡이 태어나는 날, 모친의 꿈에 흑룡(黑龍)이 바다에서 나와, 침실 문 앞에 서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이율곡이 출생했으므로, 어릴 때의 이름을 견룡(見龍)이라 했다. 이율곡 선생이 어렸을 때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배알하니, 황금으로 된 상자를 하나 주었다. 이것을 받아 열어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다. “용이 돌아간 새벽 동굴엔 구름이 아직 습기에 젖어 있고, 사향노루 지나간 봄 산엔 풀에 향기가 스며 있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꿈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특이한 상서(祥瑞)가 있을 징조라고 말했다. 그런데 선생이 사망하고 나니, 비로소 상서로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 위 글 속의 “구름이 돌아가다.”와 “사향노루 자나가다.”는 잠시 동안의 짧은 기간을 뜻하는 것이었고, “습기에 젖었다.”와 “향기가 풀에 스며있다.”는 그 명성만 오래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위대한 인물의 일생이 모두 하늘에 미리 정해져 있으니 가히 탄식할 만한 일이다. 이율곡은 49세로 사망했다. 사망하기 전날 밤에 그의 부인이 꿈을 꾸니, 흑룡이 침실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러고서 다음날 사망했다. 선조 때(임진왜란 8년 전) 영남의 한 선비가 동인당(東人黨)에 속해 이율곡(1536~1484)을 심하게 비판했다. 하루는 선비가 지리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날이 어두웠는데, 한 곳에 불빛이 있어 찾아가니 초막에 세 노인과 한 동자가 있었다. 주는 차 한 잔을 마시니 배고픈 생각이 없어졌는데, 얼마 후 밖에 한 사람이 와서, “아무리 요청해도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하니, 세 노인은 통곡하면서 “이제 공(公)께서는 서거하시고 이 나라 8년 전쟁에 죄 없는 백성들의 죽음을 어찌하리.” 하고 한탄했다. 선비가 무슨 얘기인지 물으니 세 노인은, 이율곡이 오늘 사망하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 천제(天帝)께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아 기어기 사망하게 되었으니 모두 시운(時運)임을 어쩌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피난할 곳은 관동 지방뿐이니, 거기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했다. 선비가, 이율곡은 보잘것없는 소인인데 그가 죽는다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세 노인은 “선비는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니 뒤에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고 자고 나서 보니 집 없는 산속에 돌부처와 하나의 작은 동자부처만 서 있었다. 선비가 산에서 나와 알아보니 그날 이율곡은 사망했고, 얼마 후 임진왜란에 관동 지방 산속으로 피난했는데, 거기에 지리산의 그 세 돌부처와 한 동자부처가 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지리산 들어가 확인하니, 옛날의 그 돌부처들이 모두 왜적에 의해 훼손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면 이율곡은 진정 성인(聖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