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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서산대사-용궁에서 얻은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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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용궁에서 얻은 해인

갈래 : 전설
시대 : 조선
신분 : 승려
지역 : 기타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 (133)
내용 :경주에 손인석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어디 다녀오다가 주막에 들러 잠시 쉬었는데 거기서부터 강아지 한 마리가 졸졸 따라왔다. 쫓아내도 소용이 없어서 집까지 따라 왔는데 손인석이 방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강아지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자기 신발 위에 강아지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강아지가 매우 깨끗하기도 하고 하여 이상하게 여기고는 집에 그대로 두고 키웠다. 강아지는 매우 영특하여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심부름도 하기도 했는데, 손인석은 이를 범상치 않게 여겨 집을 만들어 주고 이 강아지를 10년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한 청년이 나타나 말하길, 자신은 키워준 강아지인데 원래는 용왕의 셋째아들로 쫓겨나서 주막에 머물고 있었는데, 10년 동안 함께 지내며, 이제야 죄 값을 다 치루고 용궁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손인석은 자기도 용궁 구경을 할 수 없겠느냐면서 따라 나섰다. 바다 앞에 도착하여 청년이 뭐라고 외자 물이 갈라지고 길이 나타났다. 청년은, 자기 아버지가 무엇이든 선물하겠다고 하면 아버지 뒤에 걸려있는 주머니 세 개를 달라고 하라는 당부를 했다. 이윽고 용궁 구경도 하고 대접도 받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과연 용왕이 무엇이든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청년이 시킨 대로 주머니를 달라고 하자 용왕은 주기를 꺼려하다가 마지못해 주면서, “아직 때가 아니니 가져가더라도 열어보지 말고 그냥 걸어두었다가, 십년이 지나면 임자가 찾아올 것이니 그때는 서슴지 말고 내주도록 하라.”며 그 주머니를 주었다. 그 주머니를 받아 인사를 하고 세상으로 나오니 이미 3년이 지나 있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되던 날 아침에 대문 밖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서산대사가 목탁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는 그가 십년 전에 용궁에서 받아온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손인석은 주머니들을 내어 주면서 “십 년 동안 주머니 안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 보니 무언가 생기가 있는데 대체 무엇이요”하고 물었다. 서산대사는 “이것은 해인(海印)이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해인을 가져갔다. 서산대사는 해인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사람들이 서산대사를 융성하게 대접하는 척하며 방으로 모셔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불을 땠다. 다음날 아침 문을 열어 보니 기생과 재주꾼 등, 함께 방에 가두었던 사람들은 재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서산대사는 태연히 앉아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채로 “이 나라는 따뜻하다 하더니 어찌 손님대접을 이리 하는가”며 호통을 쳤다. 일본 사람들이 놀랐지만 다시 말을 타고 좋은 장소를 돌아다니는 척하며 한 쪽에서는 기름을 끓여 기름 가마솥을 준비해 놓고는 서산대사를 잡아다가 기름이 끓고 있는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서산대사가 가마솥에 들어가자 기름이 다 식고 얼음이 어는 것이었다. 일본사람들이 이에 대사를 해할 것을 포기하고 굴복하여 살려달라고 빌었다. 서산대사는 인피(人皮) 삼백 장을 내어 깨끗하게 말려 바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일본사람들이 이를 시키는 대로 하여 인피를 벗겨 내었는데 말리려고 걸어두면 비가 오고, 인피가 썩어 문드러지기를 수차례, 일본사람들은 사람 씨가 마르겠다 하여 대사를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 서산대사가 용서해주자 그 때부터 다시 일본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일의 복수였는지 후에 왜란이 나고, 국모까지도 강탈을 당했다. 해인은 천하에 없는 장수라도 못 이기는 그런 도장인데 우리나라가 성공한다면 그 이유는 해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