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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갈래 : 전설
시대 : 고려
신분 : 왕족
지역 : 기타
출처 : 고려사 (권43)
내용 :고려 제31대 공민왕은 14년 2월, 휘의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가 아이를 분만하다가 사망하자, 슬픔이 지나쳐 모든 국력을 왕비의 명복을 비는 일에 기울이면서 슬퍼했다. 공민왕은 성적결함(性的缺陷)이 있어서 여색을 멀리했으며, 왕비가 살아 있을 때에도 부부생활을 극히 제한했고, 여러 왕비를 모두 별궁에 거처하게 하고 접근하지 않았다. 21년 10월에 자제위(子弟衛)를 설치하고, 잘생긴 젊은 소년을 자제위에 뽑아 궁중에 있게 하고는, 대언(代言) 김흥경(金興慶)에게 관리하게 했다. 여기에 홍륜(洪倫) · 한안(韓(安) · 권진(權瑨) · 홍관(洪寬) · 노선(盧瑄) 등이 뽑혀 들어와 있었다. 왕은 김흥경과 홍륜 등 자제위 소년들을 시켜 마음대로 음행하게 하고 왕 자신은 여자로 변장하고 옆방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감정이 흥분되면 그 소년들을 자기에게로 불러 자신에게 성행위를 하게 했다. 이렇게 수십 명의 남녀들을 교대하여 음행하게 하고, 자기에게 성적 쾌감을 돋구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내렸다. 공민왕은 자식이 없어 역시 자제위의 소년들을 자기 왕비들에게 동침하게 유도하여 자식을 얻고자 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공주가 사망한 후, 네 명의 왕비들에게 강제로 자제위의 젊은이들과 동침하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익비를 제외한 세 왕비는 맹렬하게 거절해 뜻을 이루지 못했고, 김흥경과 홍륜 등을 거느리고 익비에게 가서 왕이 칼로 위협해 동침하게 하니, 익비는 위협에 못 이겨 말을 들었다. 익비 방에는 자제위의 젊은이들이 수시로 왕명이라 하면서 드나들어 음행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공민왕 사망 후, 대간들의 상소로 그 딸을 죽여야 한다고 압력이 심했으나 왕의 반대로 죽이지는 않았다. 혜비 이씨는 이제현(李齊賢)의 딸로서, 공민왕 사망 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고, 신비 염씨도 역시 중이 되었다. 정비 안씨는 끝까지 궁중에 남아 왕비의 위치를 지켰는데, 우왕(禑王)이 자주 가서 범하려 했지만, 잘 피하고 자기의 친척 아우를 우왕의 왕비가 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