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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중생사 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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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사 관음상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승려
지역 : 영남
출처 : 삼국유사 (권3)
내용 :중국 천자가 화공에게 자기 총희(寵姬)를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화공이 다 그리고는 실수해 붉은 물감을 그림에 떨어뜨려 배꼽 밑에 붉은 점이 생겼다. 황제가 그림을 보고는, 옷 속에 있는 배꼽 밑의 점까지 다 그렸으니, 황제는 화공을 총희와 통간한 것으로 의심하고 죽이려 했다. 신하들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화공을 변호해 죽음을 면하게 됐는데, 황제는 화공에게 “어젯밤 내가 꾼 꿈을 그림으로 맞게 그려오면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화공이 11면 관음상을 그려 바쳤더니, 황제가 꿈과 같다고 하면서 용서했다. 이 화공이 박사(博士) 분절(芬節)과 의논해, 신라왕이 불교를 숭상한다고 하니 신라로 건너가자고 하여 신라로 와서 중생사의 관음상을 만든 것이다. 이 관음상은 매우 영험이 있었다. 최은함(崔殷)이 아들이 없어 여기에 와 빌었더니 아들을 낳았고, 이 아이가 출생 3개월이 채 못 되어 견훤의 난리로 피난가게 되어 여기 관음상 앞에 두고 갔는데, 15일쯤 지나 와 보니 아이는 젖을 먹은 것같이 건강하게 있었다. 뒤에 고려 성종 11년 주지 성태(性泰)가 이 관음전에서 빌기를, “그간 열심히 섬겼습니다만 이제 먹을 것이 없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합니다.” 하고 빌었다. 그날 밤에 대성(大聖)이 나타나서 먹을 것을 마련해 줄 테니 가지 말라고 했다. 그 13일 뒤에 김해 사람이 쌀 6섬과 소금 4섬을 싣고 왔는데, 한 스님이 연화로 와서 시주를 요청해, 이렇게 곡식을 거두어 왔는데, 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신현정까지 같이 와서, 먼저 절에 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성태 스님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절 안으로 맞아들이니, 이 사람들이 관음상을 보고는 조금 전 신현정까지 같이 온 스님의 얼굴과 같았다고 말했다. 하루는 절에 불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불을 끄러 와서 보니 관음상이 뜰 가운데 나와 있었다. 고려 명종 3년, 점숭(占崇)이란 중이 글자를 알지 못하면서 이 절 주지가 되어 열심히 관음상을 섬겼다. 한 승려가 그 자리를 뺏으려고 중국에서 나온 사신에게, “이 절은 국가의 복을 비는 절이니 글자를 못 읽는 중이 주지가 됨은 부당합니다.” 하고 호소했다. 사신이 시험해 보려고 점숭에게 소문(疏文)을 거꾸로 내밀면서 읽어 보라 했다. 곧 점숭은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읽었는데, 다른 방에서 다시 읽으라 하니 한 자도 읽지 못했다. 사신은 대성의 보호라 말하고 그대로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