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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홍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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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관

갈래 : 전설
시대 : 조선
신분 : 관료
지역 : 기호
출처 : 한거잡록 (578)
내용 :서울에 ‘홍계관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맹인 점쟁이 홍계관이 살아서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홍윤성은 호서 사람인데, 점을 잘 친다는 말을 듣고 홍계관이 찾아가 점을 쳤다. 점괘를 본 홍계관은, 홍윤성이 뒤에 반드시 귀하게 될 명수(命數)를 타고나, 형조 판서가 되는데, 그 무렵 자기 아들이 죄를 짓고 옥에 갇혀 있을 것이니 그때 자기 아들을 구제해 달라고 하고는, 아들을 불러내 홍윤성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루 10년도 못되어 홍윤성은 세조를 도와 큰 공을 세워, 홍계관의 점괘대로 병조판서가 되었다. 하루는 죄인들을 국문하고 있는데, “제가 맹인 점쟁이 홍계관의 아들입니다.”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홍윤성은 곧 옛일을 깨닫고 그를 석방시켰다. 또 하루는 연산군이 그를 불러 시험하니 모두 잘 맞히므로 매우 미워했다. 홍계관은 연산군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역서를 맞혔고, 쥐고 있던 노랑색 귤도 알아 맞혔다. 이어서 연산군이 쥐를 한 마리 손에 감추고 무엇인지 점을 치라 했다. 홍계관은 “네 발 짐승으로 낮에는 숨고 밤에 활동하며, 굴 뚫기를 좋아하니 틀림없이 쥐입니다.” 하고 말했다. 임금이 다시 몇 마리냐고 물으니, 네 마리라고 했는데, 연산군은 한 마리를 네 마리라고 틀리게 대답했다고 하여 사형에 처했다. 홍계관이 사형장에서 말하기를, 그 쥐는 암쥐로 새끼 세 마리를 배고 있어서 네 마리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연산군이 쥐의 배를 갈라보니 과연 뱃속에 새끼 세 마리가 들어 있어, 급히 명령을 내려 사형을 중지하라 했지만, 이미 사형이 집행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