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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공

기본정보

신라의 귀족이자 수로부인의 남편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순정공은 신라의 귀족으로 『삼국유사』권2 기이2 수로부인조에 나오는 수로부인의 남편이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2 기이2 수로부인조에 따르면 순정공은 성덕왕대에 강릉태수가 되었던 인물로, 그 부인이 곧 수로부인이었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수로부인조에 보이는 순정공(純貞公)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경덕왕조의 “경덕왕이 즉위하니 휘는 헌영이고 효성왕의 동모제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세워 태자를 삼았던 까닭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비는 이찬 순정의 딸이다.(景德王立 諱憲英 孝成王同母弟 孝成無子 立憲英爲太子 故得嗣位 妃伊?順貞之女也)”라는 기록이 주목된다. 즉 경덕왕 비의 아버지로 순정(金順)이 등장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수로부인조에 보이는 순정공(純貞公)과 『삼국사기』에 보이는 경덕왕 비의 아버지 이찬(伊飡) 김순정(金順貞)은 이름 한 글자만 동음이자(同音異字)이므로, 이 둘을 같은 인물로 본 견해가 있다.(전덕재, 1997)

한편 『삼국사기』에 경덕왕의 첫 번째 부인 삼모부인의 아버지로 나오는 김순정(金順貞)은 『속일본기(續日本紀)』에도 관련된 기록이 확인된다. 『속일본기』 권9 신귀(神龜) 3년(726) 추(秋)7月 무자(戊子)조에서 신라 사신이 일본에 가서 김순정이 전년(725)에 죽었음을 알리자, 성무천황(聖武天皇)이 애도하는 조서와 함께 황색 비단과 면(綿)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속일본기(續日本紀)』 권33 보귀(寶龜) 5년(774) 3월 계묘(癸?)조에는 김순정(金順貞)이 “상재(上宰)”로서 일본과의 외교에 힘썼고, 혜공왕 10년(774)에는 그의 손(孫)인 김옹(金邕)이 집정했다고 하였다. 김옹(金邕)은 「성덕대왕신종명」에서 김양상과 함께 성덕대왕신종의 주조를 책임지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태수였다고 하였으나, 이때에는 강릉이라는 지명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신문왕 5년(685)에 전국을 9주로 나눌 때 하서주(河西州)를 설치했는데, 하서주는 경덕왕 16년(757) 9주 5소경이 확립될 때 명주(溟州)로 개명하였다. 따라서 성덕왕(재위 702-737) 당시의 지명은 강릉이 아니라 하서주였을 것이라고 하고, “태수”는 “도독(都督)”의 오기(誤記)라고 하여 순정공의 당시 직책을 “하서주도독(河西州都督)”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김흥삼, 1998)

참고문헌

전덕재, 1997, 「新羅 中代 對日外交의 推移와 眞骨貴族의 動向 -聖德王~惠恭王代를 중심으로-」『韓國史論』37,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김흥삼, 1998, 「新羅 聖德王의 王權强化政策과 祭儀를 통한 河西州地方 統治(下)」『博物館誌』4?5合.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수로부인)
水路夫人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 牽?牛而過者 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便行二日程 又有臨海亭 晝<饍>次 海龍忽攬夫人入海 公顚倒?地 計無所出 又有一老人告曰 故人有言 衆口?金 今海中傍生 何不畏衆口乎 宜進界內民 作歌唱之 以杖打岸 <則>可見夫人矣 公從之 龍奉夫人出海獻之 公問夫人海中事 <曰>七寶宮殿 所<饍>甘滑香潔 非人間煙火 此夫人衣襲異香 非世所聞 水路姿容絶代 每經過深山大澤 屢被神物掠攬 衆人唱海歌 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綱捕掠燔之喫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過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不喩??伊賜等 花?折叱可獻乎理音如
수로부인
성덕왕때 순정공이 강릉[지금의 명주]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둘러 있고,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은 없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종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입니다.”라고 하면서 모두 사양하였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와 또한 가사를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길을 가다가 또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공이 엎어지면서 땅을 쳐보아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말하기를, “옛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으니, 이제 바다 속의 미물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그 말을 따르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칠보 궁전에 음식은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부인의 옷에는 이상한 향기가 풍겼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수로는 용모와 자색이 세상에서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에게 붙들려갔다. 여러 사람이 해가를 불렀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크냐.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노인의 헌화가는 이렇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