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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공

기본정보

신라 제31대 신문왕의 비(妃)인 신목왕후(神穆王后)의 아버지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의 두 번째 비(妃)인 신목왕후(神穆王后)의 아버지이다. 신라 제17대 나물왕(奈勿王)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2년(655)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전문정보

김운공(金運公)은 신라 제31대 신문왕의 비(妃) 신목왕후(神穆王后)의 아버지이다. 이는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록을 따른 것으로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효소왕 즉위조에서는 “(왕의) 어머니는 성이 김씨로 신목왕후(神穆王后)인데,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딸이다.(母姓金氏 神穆王后 一吉金欽運女也)”라고 하여 신목왕후의 아버지를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각각 신목왕후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는 김운공과 김흠운은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효소왕 즉위조에는 “김흠운(金欽運)” 또는 “김흠운(金欽雲)”이라고 하였고, 같은 책 권47 열전7 김흠운조에는 “김흠운(金歆運)”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삼국사기』 권47 열전47 김흠운(金歆運)조에는 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김운공은 신라 제17대 나물왕(奈勿王)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서 어울려 놀았는데 명예와 기개를 중시하였다고 한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2년(655)에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에게 북쪽 변방 33성을 빼앗기자 그는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출전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아래서 진을 치고 조천성(助川城)을 공략하려 하다가 백제군의 기습을 받아 끝내 대감(大監) 예파(穢破)와 소감(小監) 적득(狄得)과 함께 전사하였다.

참고문헌

김수태, 1996, 『新羅中代 政治史硏究』, 일조각.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十一 神文王 [金氏 名政明 字日炤 父文<武>王 母慈訥王后 妃神穆王后 金運公之女 辛巳立 理十一年]
제31 신문왕 [김씨이고 이름은 정명, 자는 일소이다. 아버지는 문무왕이고 어머니는 자눌왕후이다. 비는 신목왕후로 김운공의 딸이다. 신사년에 즉위하여 11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