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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 각간

기본정보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인 점물왕후(占勿王后)의 아버지이다.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순원(順元)은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인 점물왕후(占勿王后)의 아버지로 성(姓)은 김(金)씨이다.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대에 중시(中侍)의 직을 역임하다가 효소왕 9년(700)에 일어난 경영(慶永)의 모반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 이후 성덕왕대 정계에 복귀하여 황복사(皇福寺) 석탑에 사리함을 안치하는 사업의 책임자로 활약하였으며, 자신의 딸을 왕의 두 번째 비(妃)로 들이기도 하였다.

전문정보

순원(順元)의 성(姓)은 김(金)씨이고,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인 점물왕후(占勿王后)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성덕왕19년(720)조에는 성덕왕의 두 번째 왕비를 “이찬(伊?) 순원(順元)의 딸”이라고 하였고,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순무(順无) 각간(角干)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순무(順无)는 순원(順元)이 오각(誤刻)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두 사서에 등장하는 점물왕후의 아버지는 모두 순원(順元)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순원(順元)은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 7년(698)에 대아찬(大阿?)의 관등으로 중시(中侍)의 직(職)을 역임하였으나, 같은 왕 9년(700)에 일어난 경영(慶永)의 모반에 연루되어 파면 당하였다. 그 후 신라의 중앙 정계에서 그의 활동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성덕왕대에 들어서부터이다. 성덕왕 5년(706)에 작성된 「황복사석탑금동사리함기(皇福寺石塔金銅舍利函記)」에는 “소판 김순원(金順元)과 김흥종(金興宗)이 특별히 왕명을 받든다.( 蘇判金順元金興宗 特奉敎旨)”라고 하여 당시 김순원이 김흥종과 더불어 사리함을 안치하는 사업의 책임자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업은 성덕왕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추진한 왕실사업이었으므로, 이를 책임지고 있었던 김순원은 이미 중앙 정계에 복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성덕왕 19년(720)에는 자신의 딸인 점물왕후를 왕의 두 번째 비(妃)로 들이게 되어 외척(外戚)의 지위까지 획득하였다.

김순원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먼저 그를 신라 중대(中代) 왕당파(王黨派)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파악한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김순원을 효소왕대 국왕의 최측근인 중시(中侍)직을 역임하면서 위축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개혁에 앞장서다 진골귀족세력에 의해 파면되는 인물로 본다. 그리고 성덕왕대에 들어서 정계에 복귀한 뒤에는 국왕의 편에 서서 진골귀족세력에 대항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로 평가한다.(김수태, 1996) 반대로 김순원을 신라 중대의 왕권을 견제하는 여러 진골귀족세력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김순원은 반효소왕계 인물로 미약한 효소왕권을 누르고 중시직에 올랐다가 반란의 실패로 파면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순원은 성덕왕을 옹립하여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고, 또 다른 진골귀족세력 중 하나인 김원태 세력과의 경쟁을 통해 외척으로까지 성장하였다는 것이다.(박해현, 2003)

한편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효성왕 3년(739)조에는 “이찬 순원(順元)의 딸 혜명(惠明)을 맞이하여 비(妃)로 삼았다.(納伊?順元女惠明爲妃)”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에 따르면 김순원은 자신의 또 다른 딸인 혜명(惠明)을 외손자인 효성왕(孝成王)과 혼인 시킨 것이 된다. 반면에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효성왕의 비(妃)인 혜명왕후(惠明王后)를 “진종 각간의 딸(眞宗角干之女)”이라고 하여 『삼국사기』와는 다른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에 대해 혜명왕후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같이 순원의 딸이고, 진종은 “영종의 딸이 후궁으로 들어갔다.(永宗女入後宮)”라는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효성왕 4년(740)조에 나오는 영종을 말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井上秀雄, 1974)

참고문헌

井上秀雄, 1974,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김수태, 1996, 『新羅中代政治史硏究』, 일조각.
박해현, 2003, 『신라 중대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十三 聖德王 [名興光 本名隆基 孝昭之母弟也 先妃陪炤王后 諡嚴貞 元大(阿)(干)之女也 後妃占勿王后 諡炤德 順<元>角干之女 壬寅立 理三十五年 陵在東村南 一云楊長谷]
제33 성덕왕 [이름은 흥광이며 본명은 융기로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첫째 비는 배소왕후인데, 시호는 엄정으로 원대아간의 딸이다. 둘째 비는 점물왕후로 시호는 소덕이고 순원 각간의 딸이다. 임인년에 즉위하여 35년간 다스렸다. 능은 동촌 남쪽에 있는데 양장곡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