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진종각간

기본정보

신라 제36대 효성왕의 비인 혜명의 아버지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신라 제36대 효성왕의 비인 혜명(惠明)의 아버지이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혜명은 순원(順元)의 딸이라 기록되어 있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왕력에는 “왕비는 혜명왕후로 진종 각간의 딸이다.(妃惠明王后 眞宗角干之女)”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효성왕 3년조(739)에는 “이찬 순원의 딸인 혜명을 받아들여 비로 삼았다.(納伊?順元女惠明爲妃)”라고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혜명왕후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때 순원과 진종을 동일인물이 착종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삼국유사』 왕력에 성덕왕의 비가 순원 각간의 딸이라고 하는 기록이 보이므로 같은 편목 내에서 동일인물이 다르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혜명황후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같이 순원의 딸이고, 진종은 “영종의 딸이 후궁으로 들어갔다.(永宗女入後宮)”는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효성왕 4년조(740)에 나오는 영종을 말하는 것으로 파악한 견해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효성왕에게는 첫째 왕비인 박씨, 즉 진종의 딸이 있고, 순원의 딸인 혜명왕후는 둘째 왕비가 되는 것이다.(井上秀雄, 1974; 김수태, 1996)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따랐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영종의 딸이 “후궁(後宮)”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의 견해에서는 이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데, 만약 박씨왕비를 후궁으로 볼 수 있다면 박씨왕비 존재 가능성의 가장 큰 근거인 『신당서(新唐書)』, 『책부원귀(冊府元龜)』 등 중국사료에, 혜명왕후보다 먼저 박씨 왕비를 왕비로 책봉한 기사가 보이므로 이에 대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진종과 영종은 다른 인물이고, 효성왕에게는 영종의 딸인 후궁이 첫째 왕비인 박씨, 둘째 왕비인 혜명왕후와 함께 왕비로 있었다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박해현, 2003) 이러한 기록들의 차이점은 후일 효성왕의 왕비로 순원의 딸인 혜명만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井上秀雄, 1974, 『新羅史基礎硏究』, 同出版株式會社.
김수태, 1996, 『新羅中代政治史硏究』, 일조각.
박해현, 2003, 『신라 중대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十四 孝成王 [金氏 名承慶 父聖德王 母炤德太后 妃惠明王后 眞宗角干之女 丁丑立 理五年 法流寺火葬 骨散東海]
제34 효성왕 [김씨이며, 이름은 승경이다. 아버지는 성덕왕이고, 어머니는 소덕태후이다. 왕비는 혜명왕후로, 진종각간의 딸이다. 정축년(737)에 즉위하여 5년간 다스렸다. 법류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동해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