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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파부인

기본정보

신라 제44대 민애왕의 어머니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신라 제44대 민애왕의 어머니로 제38대 원성왕의 아들인 인겸태자(仁謙太子)의 딸이다.『삼국유사』에는 귀파부인(貴巴夫人)으로,『삼국사기』에는 귀보부인(貴寶夫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문정보

신라 제44대 민애왕의 어머니로『삼국유사』에는 혜충왕(惠忠王)의 딸 귀파부인(貴巴夫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민애왕 즉위년조에서는 “어머니 박씨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태후(宣懿太后)로 삼았다(母朴氏 貴寶夫人爲宣懿太后)” 하여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귀파부인(貴巴夫人)과 귀보부인(貴寶夫人)은 동일인물로 생각된다.(김창겸, 2003)

그런데『삼국유사』의 기록에 나타나는 혜충왕은 원성왕의 아들인 인겸태자를 가리키는데 이 경우, 귀파부인의 성은 김씨가 된다. 이는 앞서 귀파부인의 성을 박씨로 기록한『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상충되고 있다.

신라 하대의 원성왕계는 원성왕-인겸태자-소성왕-애장왕으로 이어졌는데『삼국유사』에 따르면 귀파부인은 바로 인겸태자의 딸이고, 남편인 충공 역시 인겸태자의 아들이므로 민애왕의 부모는 남매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원성왕계 내에서 권력의 독점을 위해 근친혼이 성행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당연한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귀파부인의 성은 김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삼국사기』에서 귀파부인을 박씨로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신라 중국으로부터 책봉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왕비의 성이 김씨인 것을 숨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문경현, 1990)

혹은『삼국사기』의 기록을 신뢰하여 귀파부인은 박씨이며 이것은 본래 무열왕계의 왕비족이었던 박씨를 원성왕계가 왕비로 끌어들였던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신형식, 1984)

참고문헌

신형식, 1984,『韓國古代史의 新硏究』, 일조각.
문경현, 1990,「新羅 朴氏의 骨品에 대하여」,『歷史敎育論集』13?14합.
김창겸, 2003,『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四 閔[一作敏]哀王 [金氏 名明 父忠恭角干 追封宣康大王 母追封惠忠王之女貴巴夫人 諡宣懿王后 妃无容皇后 永公角干之女 戊午立 至己未正月二十二日崩]
제44 민애왕 [김씨이고 이름은 명이다. 아버지는 충공각간으로 선강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어머니는 추봉받은 혜충왕의 딸 귀파부인으로 시호를 선의왕후라고 하였다. 비는 무용황후로 영공각간의 딸이다. 무오년에 즉위하여 기미년 정월 22일에 이르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