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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정각간

기본정보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아버지
생몰년: ?~836

일반정보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의 셋째 아들인 예영(禮英)의 아들로 신라 제43대 희강왕(僖康王)의 아버지인 헌정(憲貞)과 형제이다. 그의 두 아들은 각각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과 제 47대 헌안왕(憲安王)이 되었다. 제41대 헌덕왕(憲德王)대에 시중을 역임하였고,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이 일어나자 토벌군 사령관으로 활약하는 등 정치력과 군공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제42대 흥덕왕(興德王)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균정은 왕위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조카 제륭(悌隆)이 이에 반발하여 왕위계승 분쟁이 벌어졌고 결국 무력대결에서 패해 사망하였다.

전문정보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아버지이다. 균정의 가계는 제38대 원성왕-예영-균정-제45대 신무왕(우징)으로 이어지는데, 가계에서 보이듯이 본래 균정은 정식으로 왕위를 이어나가던 집안은 아니었다. 본래 이 시기 신라의 왕위는 제38대 원성왕-인겸태자-제39대 소성왕-제 40대 애장왕으로 이어졌던 인겸태자계가 이어가고 있었는데, 제42대 흥덕왕에 이르러 왕에게 후사가 없자, 예영계인 균정이 강력한 왕위계승권자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윤병희, 1982)

결국 균정은 왕위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균정의 처 진교부인(眞矯夫人)이 낳은 우징은 제45대 신무왕이 되었고, 균정의 후처 조명부인(照明夫人)이 낳은 의정은 제47대 헌안왕이 되었다. 한편, 후처인 조명부인은 흥덕왕의 동생이자 인겸태자계 내에서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던 김충공(金忠恭)의 딸이었는데 이러한 근친혼은 인겸태자계가 원성왕 집안 내부의 결합을 공고히하기 위해 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김창겸, 2003)

균정은 일찍이 신라의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었다.『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애장왕 3년(802)조에 의하면 그는 일찍이 일본에 가왕자(假王子)로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본인이 사양하여 실현되지 않았다.(冬十二月 授均貞大阿爲假王子 欲以質倭國 均貞辭之) 헌덕왕 4년(812)에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헌덕왕 14년(822) 김헌창의 반란이 일어나자 그의 아들 김우징과 함께 토벌군 사령관으로서 공훈을 세웠다.

당시 흥덕왕은 자신에게 후사가 없어 동생인 충공(忠恭)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그를 상대등에 임명하였으나 충공은 예상보다 일찍 사망하였다. 이에 흥덕왕은 충공의 후임으로 가능한한 자신의 조카들 가운데 지명하고자 하였으나, 835년 당시 그의 조카는 충공의 아들 김명뿐이었다. 이때 김명은 19세로 부친의 자리를 계승하기에는 연령과 관록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흥덕왕은 비록 예영계이기는 하나 시중 경력과 군공(軍功)을 갖춘 김균정을 후임 상대등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흥덕왕은 김명을 시중(侍中)에 임명하여 예영계에 대한 일종의 견제를 꾀했다.(이기동, 1985)

이러한 인겸태자계와 예영계의 균형은 흥덕왕 당대에는 유지되었으나 이로부터 2년 후인 836년 흥덕왕이 후계자에 대한 별다른 언급없이 사망하자, 곧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신라 하대에는 상대등직에 오른 인물이 대개 왕위를 계승했던 만큼, 김균정은 당연히 자신이 즉위할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의 아들인 김우징(金祐徵), 조카 김예징(金禮徵), 김주원계의 김양(金陽) 등이 그를 후원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김명이 김균정의 조카인 제륭을 왕으로 추대하며 반발하자, 사태는 무력 대결 양상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왕위계승분쟁은 김균정과 김명의 대립이라는 면에서는 예영계와 인겸태자계의 싸움이었으며, 김균정과 김제륭의 대립이라는 면에서는 예영태자 내부의 싸움이었다.(이기동, 1985)

김균정은 이 싸움에서 패하여 죽었으며, 그 아들 김우징은 837년 청해진으로 피신하였다. 후에 김우징은 민애왕(김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즉위한 그해에 아버지 균정을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참고문헌

황수영, 1969,「신라 민애대왕 석탑기 -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의 조사 -」,『史學志』3.
이기동, 1980,「新羅 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歷史學報』85.
윤병희, 1982,「新羅 下代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歷史學報』96.
김창겸, 2003,『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五 神<武>王 [金氏 名佑(徵) 父均<貞>角干 追封成德大王 母貞(矯)夫人 追封祖禮英 (爲)惠康大王 妃(貞)從 一作繼太后 明海□之女 己未四月立 至十一月一十三日崩]
제45 신무왕[김씨이고 이름은 우징이다. 아버지는 균정각간으로 성덕대왕에 추봉되었다. 어머니는 정교부인이다. 할아버지인 예영을 혜강대왕으로 추봉하였다. 왕비는 정종 혹은 계태후라고도 하며 명해□의 딸이다. 기미년 4월에 즉위하였고 11월 13일에 이르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