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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원공

기본정보

신라 제 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대의 재상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충원공은 신라 제 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대의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 영축사조에서는 그가 영축사를 창건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생몰년은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전문정보

충원공은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대의 재상으로, 영축사(靈鷲寺)를 창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몰년은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4 영축사(靈鷲寺)조에 의하면 그가 영축사를 창건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신라 진골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대 영순(永淳) 2년(683) 계미에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山國) 온천에서 목욕하고 성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屈井驛) 동지(桐旨)들판에서 머무르며 쉬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매를 놓아 꿩을 좇게 했는데, 그 꿩이 날아서 금악(金岳)을 지나갔다. 어두워서 종적을 찾을 수 없었지만, 방울소리를 듣고 그것을 찾아 굴정현(屈井縣) 관아 북쪽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었는데, 우물 안의 물이 핏빛으로 흐려졌다. 꿩이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으니 매도 그것을 측은히 여기는지 함부로 움켜쥐지 않았다. 공이 그것을 보고 측은함을 느껴 이곳에 대해서 점을 쳐서 물었더니, 절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공이 서울로 돌아와 왕에게 아뢰어, 그 현의 관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땅에 절을 지으니 이에 영축사(靈鷲寺)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충원공에 대해서는 이 외에 전하는 다른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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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3 탑상4 영축사)
靈鷲寺
寺中古記云 新羅眞骨第三十一主神文王代 永淳二年癸未[本文云元年誤] 宰相忠元公 ?山國[卽東萊縣 亦名萊山國]溫井沐浴 還城次 到屈井驛桐旨野駐歇 忽見一人放鷹而逐雉 雉飛過金岳 杳無?迹 聞鈴尋之 到屈井縣官北井<邊> 鷹坐樹上 雉在井中 水渾血色 雉開兩<翅> 抱二雛焉 鷹亦如相惻隱 而不敢攫也 公見之惻然有感 卜問此地 云可立寺 歸京啓於王 移其縣於他所 創寺於其地 名靈鷲寺焉

영축사
절의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신라 진골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대 영순(永淳) 2년 계미(683)에[본문에 원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山國)[곧 동래현(東萊縣)이니 또는 내산국(萊山國)이라 이른다.] 온천에서 목욕하고 성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屈井驛) 동지(桐旨)들판에 머무르며 쉬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매를 놓아 꿩을 쫓게 했는데, 꿩은 날아서 금악(金岳)을 지나갔다. 어두워서 종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방울소리를 듣고 그것을 찾아 굴정현(屈井縣) 관아 북쪽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었는데 물이 핏빛으로 흐려졌다. 꿩이 두 날개를 열어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으니 매도 또한 그것을 측은히 여기는지 함부로 움켜쥐지 않았다. 공(公)이 그것을 보고 측은한 느낌이 있어 이곳에 대하여 점을 쳐서 물었더니, ‘절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왕에게 아뢰어, 그 현의 관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땅에 절을 지으니 이에 영축사(靈鷲寺)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