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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교사

기본정보

신라 하대(下代)의 승려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범교사(範敎師)는 신라 하대(下代)에 활동한 승려이다.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이 당시 국선(國仙)이었던 응렴(應廉)을 사위로 삼으려 하자, 범교사는 그에게 아름다운 둘째 공주 대신에 못생긴 첫째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설득하였다. 범교사의 뜻에 따라 첫째 공주를 아내로 맞은 응렴은 후사 없이 사망한 헌안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이 되었고, 이에 범교사는 왕으로부터 대덕(大德)의 직책과 금 130냥을 하사받았다.

전문정보

범교사(範敎師)는 신라 하대(下代)에 활동한 승려로,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의 즉위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에는 범교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대 국선(國仙)이었던 응렴(應廉)은 20살이 되던 해 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연회에 참석하였다. 이때 왕이 응렴에게 국선으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보았던 기이한 일을 이야기해보라고 하였다. 이에 응렴은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하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아래 있는 사람과 세력이 있는 부자이면서도 검소하게 옷 입는 사람, 그리고 본래부터 귀하고 세력이 있는데도 그 위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 등 품행이 아름다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서 응렴의 어진 마음을 흠모하여 자신의 두 딸 중 하나를 그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다. 응렴이 물러나 이 사실을 부모와 의논하니, 그 부모는 미모가 뛰어난 둘째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였다. 이때 응렴의 화랑 무리 중에 상수(上首)인 범교사(範敎師)가 이 사실을 듣고서는 그의 집에 찾아와 응렴이 못생긴 첫째 공주와 결혼하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이에 응렴은 범교사의 말에 따라 첫째 공주에가 장가를 들었는데, 이때로부터 3개월 후 헌안왕의 병이 위독해져 맏사위인 응렴에게 왕위를 넘겨준 채 사망하였다. 응렴이 신라 제48대 경문왕으로 즉위하자 범교사는 이전에 언급한 세 가지 좋은 일에 대해서 첫째, 맏딸에게 장가들었으므로 지금 왕위에 올랐고, 둘째, 전에 흠모하던 둘째 공주를 지금 쉽게 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셋째, 맏딸에게 장가들어 왕과 왕비가 크게 기뻐했었다고 말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1 신라본기11 헌안왕(憲安王) 4년(860)조와 같은 책 경문왕(景文王) 3년(863)조에는 이와 유사한 내용의 기록이 나누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는 범교사를 흥륜사승(興輪寺僧)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렇다면 범교사는 흥륜사의 승려이자 응렴의 낭도무리에 속해있었던 자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김상현, 1999)

이처럼 신라에서 화랑을 보좌하며 자문하였던 승려를 승려낭도라고 하는데, 이들은 국선을 시봉(侍奉)하고 보좌하며 모든 낭도 무리들을 이끌었다.(김영태, 1970) 특히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범교사를 상수(上首)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는 응렴의 낭도 무리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지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낭도들을 이끌고 대표하는 위치에서 응렴의 참모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전기웅, 1994)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의 기록에 따르면 범교사는 경문왕의 즉위 이후 왕으로부터 대덕(大德)의 직책과 금 130냥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참고문헌

김영태, 1970, 「僧侶花郞考」『佛敎學報』7.
전기웅, 1994, 「新羅下代의 花郞勢力」『新羅文化』10·11合.
김상현, 1999, 『신라의 사상과 문화』, 일지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
王諱膺廉 年十八爲國仙 至於弱冠 憲安大王召郞 宴於殿中 問曰 郞爲國仙 優遊四方 見何異事 郞曰 臣見有美行者三 王曰 請聞其說 郞曰 有人爲人上者 而?謙坐於人下 其一也 有人豪富 而衣儉易 其二也 有人本貴勢 而不用其威者 三也 王聞□其言 而知其賢 不覺墮淚而謂曰 朕有二女 請以奉巾櫛 郞避席而拜之 稽首而退 告於父母 父母驚喜 會其子弟 議曰 王之上公主貌甚寒寢 第二公主甚美 娶之幸矣 郞之徒上首範敎師者聞之 至於家 問郞曰 大王欲以公主妻公 信乎 郞曰 然 曰 奚娶 郞曰 二親命我宜弟 師曰 郞若娶弟 則予必死於郞之面前 娶其兄 則必有三美 誡之哉 郞曰 聞命矣 旣而王擇辰 而使於郞曰 二女惟公所命 使歸以郞意奏曰 奉長公主爾 旣而過三朔 王疾革 召群臣曰 朕無男孫 ??之事 宜長女之夫膺廉繼之 翌日王崩 郞奉遺詔卽位 於是 範敎師詣於王曰 吾所陳三美者 今皆著矣 娶長故 今登位 一也 昔之欽艶<弟>主 今易可取 二也 娶兄故 王與夫人喜甚 三也 王德其言 爵爲大德 賜金一百三十兩 王崩 諡曰景文 …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景文大王)
왕의 이름은 응렴(應廉)으로 나이 18세에 국선(國仙)이 되었다. 20살이 되자 헌안대왕(憲安大王)이 낭(郎)을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며 묻기를, “낭은 국선이 되어 사방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어떤 기이한 일을 보았는가?”라고 하였다. 낭이 대답하기를, “신은 행실이 아름다운 자, 셋을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들려 달라.”라고 하자, 낭이 말하기를,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아래 있는 이가 하나이고, 세력이 있는 부자이면서도 검소하게 옷 입는 사람이 둘이며, 본래부터 귀하고 세력이 있는데도 그 위력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셋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의 어짊을 알아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고 말하기를, “짐에게는 두 딸이 있으니 (그대에게) 시집보내기를 청한다.”라고 하였다. 낭이 자리를 피하여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간 뒤, 부모에게 고하였다. 그 부모는 놀라고 기뻐하며 그 자제들을 모아 의논하기를, “왕의 첫째 공주는 외모가 무척 못생겼고,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다우니 둘째를 아내로 맞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낭의 무리 중 우두머리인 범교사(範敎師)가 그것을 듣고서는 낭의 집에 이르러 묻기를, “대왕께서 공주를 공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하자, 낭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범교사가) 다시 묻기를, “어느 공주에게 장가가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낭이 대답하기를,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아우가 좋겠다고 분부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범교사가 말하기를, “낭께서 만일 아우에게 장가를 드신다면 저는 반드시 낭의 면전에서 죽을 것이고, 언니에게 장가드신다면 필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경계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낭이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왕이 날을 가려 사자를 보내 낭에게 말하기를, “두 딸은 공의 명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가서 낭의 뜻을 아뢰기를, “첫째 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3개월이 지나 왕의 병이 위독해지자 군신들을 불러 말하기를, “짐은 남손(男孫)이 없으니 죽은 뒤의 일은 마당히 맏딸의 남편 응렴이 이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튿날 왕이 죽자 낭은 유조(遺詔)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이때 범교사가 왕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제가 세 가지 좋은 일이라고 말한 것이 지금 모두 드러났습니다. 맏딸에게 장가들었으므로 지금 왕위에 오르셨으니 첫째이고, 전에 흠모하던 둘째 공주를 지금 쉽게 취할 수 있으니 둘째이며, 맏딸에게 장가들어 왕과 왕비가 크게 기뻐했던 것이 셋째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고맙게 여겨 작위를 내려 대덕(大德)으로 삼고 금 130냥을 내려주었다. 왕이 죽었는데 시호를 경문(景文)이라고 하였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