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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화상

기본정보

신라 하대(下代)의 승려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대거화상(大炬和尙)은 신라 하대(下代)에 활약한 승려로 대구화상(大矩和尙)이라고도 한다. 그는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대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 4명의 국선(國仙)들이 지은 노래 세 수에 곡을 붙여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 등 세 가지 곡을 만들었다. 또한, 신라 제51대 진성왕(眞聖王, 재위 887-897)대 각간 위홍(魏弘)과 함께 향가집(鄕歌集)인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전문정보

대거화상(大炬和尙)은 신라 하대(下代)에 활약한 승려이다. 『삼국사기』에서는 대구화상(大矩和尙)이라고 쓰는데, 『삼국유사』의 대거화상과 동일인물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에 따르면 대거화상은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대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 4명의 국선(國仙)들이 함께 지은 노래 세 수에 곡을 붙여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 등 세 가지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진성왕 2년(888)조에는 신라 제51대 진성왕(眞聖王, 재위 887-897)이 대구화상에게 각간 위홍(魏弘)과 함께 향가집(鄕歌集)인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하도록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대거화상은 화랑들로부터 왕에게 바칠 곡을 청탁받거나 왕에게 향가집 편찬을 명받을 만큼 당대에 음악으로 이름 높았던 승려였던 듯하다. 특히 경문왕 때 4명의 국선이 가사 3수를 짓고 이를 대거화상에게 보냈던 일은 그가 당대의 화랑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김상현, 1999) 이와 더불어 대거화상이 진성왕대 최고 권력자였던 위홍과 함께 『삼대목』의 편찬에 참여한 사실은 그를 정치세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던 승려로 파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전기웅, 1994)

진성왕대 대거화상이 편찬했다는 『삼대목』은 전하는 기록이 없어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삼대목』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삼대목』의 “삼대(三代)”가 『삼국사기』의 시기구분인 상대(上代)·중대(中代)·하대(下代)를 의미한다고 이해한 시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삼대목』이 편찬되던 진성왕대에 이미 신라인들 스스로가 당시를 하대·말세(末世)로 인식했다는 것이다.(김철준, 1964) 이와 달리 『삼대목』의 “삼대(三代)”를 향찰 표기인 “사뇌목”으로 보기도 하고(박지홍, 1976), 혹은 일반적 의미인 하·은·주를 지칭한, 이른바 “태평신라(太平新羅)”를 표상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지헌영, 1990)

참고문헌

김철준, 1964, 「韓國古代國家發達史」『韓國文化史大系』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박지홍, 1976, 「삼대목-그 편찬과 내용」『국문학의 연구』, 문성출판사.
지헌영, 1990, 「「三代目」硏究 序說」『東方學志』68.
전기웅, 1994, 「新羅下代의 花郞勢力」『新羅文化』10·11合.
김상현, 1999, 『신라의 사상과 문화』, 일지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
… 國仙邀元郞譽昕郞桂元叔宗郞等 遊覽金蘭 暗有爲君主理邦國之意 乃作歌三首 使心弼舍知 授針卷 送大炬和尙處 令作三歌 初名玄琴抱曲 第二大道曲 第三問群曲 入奏於王 王大喜稱賞 歌未詳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景文大王)
(전략) 국선(國仙)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할 때 몰래 임금을 위하여 나라를 다스릴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를 지어,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 공책을 주고 대거화상의 처소에 보내어 세 가지 노래를 짓게 하였다. 첫 번째 곡의 이름은 “현금포곡(玄琴抱曲)”이요, 두 번째는 “대도곡(大道曲)”이며, 세 번째는 “문군곡(問群曲)”이다. 왕에게 들어가 아뢰니 왕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