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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남해차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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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차차웅

기본정보

신라 제2대 왕.
생몰년: ?-24
재위기간: 4-24

일반정보

혁거세의 적자(嫡子)이며, 비는 운제부인(雲帝婦人)이다. 그는 탈해(脫解)가 지혜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그의 딸 아니(阿尼)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남해왕은 남해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차차웅(次次雄)이란 존장자에 대한 칭호로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신라 중대의 학자인 김대문(金大問)에 의하면 차차웅은 방언으로 무(巫)를 뜻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무(巫)가 귀신을 위하고 제사를 받드는 모습을 경외하여 마침내 존장자, 즉 왕을 자충이라 하였다고 한다. 남해차차웅 3년(6)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다.

전문정보

남해왕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은 남해왕 3년(6)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3년조에 “3년 춘정월에 시조묘를 세웠다.(三年 春正月 立始祖廟)”라는 기록과 『삼국사기』 권32 잡지1 제사조에 “제2대 남해왕 3년에 비로소 시조 혁거세의 묘(廟)를 세워 사시(四時)로 제사하고, 친누이 아로(阿老)로써 제사를 맡게 하였다.(第二代南解王三年春 始立始祖赫居世廟 四時祭之 以親妹阿老主祭)”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조묘의 주신(主神)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즉 시조란 건국신화 상의 시조로, 특정한 족(族)이나 가(家)의 범위를 넘어서는 인물이므로 후대의 박(朴), 석(昔), 김씨(金氏)가 모두 혁거세를 시조로 모셨음을 알 수 있다.(신종원, 1984) 이러한 점은 범부여계의 시조로 고구려, 백제가 공히 동명(東明)을 시조신으로 모셔 묘사(廟祠)를 둔 예와 비교된다.

신라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사로국 성립 이전에 경주지역에는 6개의 집단이 있었으며, 이들이 모여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사로국을 성립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 혁거세를 “불구내왕(弗矩內王)”라고 표현하였고, 하늘의 빛이 내려와 생긴 알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점을 볼 때 그는 광명적 존재이자 그 광명으로 현현(顯現)된 천신적(天神的) 존재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혁거세가 건국신화에서 천신적(天神的) 혹은 천손적(天孫的) 존재로 나타나는 것은 그가 단순한 인격신이 아닌 천신(天神)으로 소급됨으로써 이에 대한 제사 또한 왕권의 독보성을 보장받는 의식으로 승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시조묘 제사는 이전까지 6촌내에서 행해지던 제사의식을 통합함으로써 정치?사회?사상적 통합을 이루어냈다. 남해왕대의 신라사회는 6촌장세력에 의해 연합적 형태로 형성된 상태였는데, 초기 왕권은 선진의 청동기, 철기문화와 정치역량을 가졌다고 해도 6촌장의 영향력을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11년조의 왜구 침입시 6부의 병력 이외에는 군사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박씨 왕계와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군사력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남해왕은 혁거세에 투영된 천신적 존재를 제사함으로써 천신을 정점으로 하는 종교적 권위를 소유할 수 있었고 아울러 시조숭배관념은 사로국내의 강한 공동체의식을 형성해 줌으로써 사로국 결집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김병곤, 2003)

시조묘의 성격에 대해서 이를 즉위의례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위의례란 군주가 군주로써의 공적인 권위를 체득하기 위해 필요한 의례이며 그 권위가 정당성을 가진 것임을 공적(公的)으로 표시하는 의례이다. 시조묘 제사가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거의 모든 왕들이 즉위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해의 1월이나 2월에 시조묘에 친사(親祀)하는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새로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시조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자신이 시조에서 비롯된 정통의 왕으로, 시조가 지닌 신력(神力)을 부여받아 자신 역시 천신적이고 농업신적 존재의 현현(顯現)이며, 자신이야말로 생산의 풍요와 사회의 질서를 책임지는 존재임을 공포하는 것이다.(나희라, 2003)

한편 시조묘의 위치에 대해 이를 오릉(五陵)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에서 수로왕릉을 “수로왕묘(首露王廟)”로 칭한 사례에 근거하고 있다. 아울러 『삼국유사』 권1 기이1 미추왕죽엽군조에 미추왕릉을 대사(大祀)인 삼산(三山)과 같은 격으로 제사 지내고 이를 오릉의 위에 놓으며 대묘(大廟)라 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추왕릉은 대묘(大廟)이며 오릉은 시조묘(始祖廟)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최광식, 2007)

참고문헌

신종원, 1984, 「三國史記 祭祀志 硏究」『사학연구』38.
김병곤, 2003, 『신라 왕권 성장사 연구』, 학연문화사.
나희라, 2003, 『신라의 국가제사』, 지식산업사.
최광식, 2007, 『한국고대의 토착신앙과 불교』, 고려대학교출판부.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 南解次次雄[父赫居世 母閼英 姓朴氏 妃雲帝夫人 甲子立 理二十年 此王位亦云居西干]
제2 남해차차웅 [아버지는 혁거세이고 어머니는 알영이다. 성은 박씨이고 비는 운제부인이다. 갑자에 왕위에 올라 20년간 다스렸다. 이 왕위는 또한 거서간이라고도 한다.]

第三 弩禮[一作弩]尼叱今[父南解 母雲帝 妃辭要王之女金氏 甲申立 理三十三年 尼叱今 或作尼師今]
제3 노례[혹은 노]니질금 [아버지는 남해이고 어머니는 운제이다. 비는 사요왕의 딸 김씨이다. 갑신에 즉위하여 30년간 다스렸다. 이질금은 또는 이사금이라고도 한다.]

第四 脫解[一作吐解]尼叱今[昔氏 父琓夏國含達婆王 一作花夏國王 母積女國王之女 妃南解王之女阿老夫人 丁巳立 理二十三年 王崩水葬未(召)?井丘中 塑骨安東岳 今東岳大王.]
제4 탈해[혹은 토해]니질금 [석씨이다. 아버지는 완하국 함달파왕으로 혹은 화하국왕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적녀국왕의 딸이고 비는 남해왕의 딸 아로부인이다. 정사에 즉위하여 23년간 다스렸다. 왕이 죽자 미소의 소정구 중에 수장하였다. 뼈를 빚어 동악에 안치하니 지금의 동악대왕이다.]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 南解次次雄[父赫居世 母閼英 姓朴氏 妃雲帝夫人 甲子立 理二十年 此王位亦云居西干]
제2 남해차차웅 [아버지는 혁거세이고 어머니는 알영이다. 성은 박씨이고 비는 운제부인이다. 갑자에 왕위에 올라 20년간 다스렸다. 이 왕위는 또한 거서간이라고도 한다.]

第三 弩禮[一作弩]尼叱今[父南解 母雲帝 妃辭要王之女金氏 甲申立 理三十三年 尼叱今 或作尼師今]
제3 노례[혹은 노]니질금 [아버지는 남해이고 어머니는 운제이다. 비는 사요왕의 딸 김씨이다. 갑신에 즉위하여 30년간 다스렸다. 이질금은 또는 이사금이라고도 한다.]

第四 脫解[一作吐解]尼叱今[昔氏 父琓夏國含達婆王 一作花夏國王 母積女國王之女 妃南解王之女阿老夫人 丁巳立 理二十三年 王崩水葬未(召)?井丘中 塑骨安東岳 今東岳大王.]
제4 탈해[혹은 토해]니질금 [석씨이다. 아버지는 완하국 함달파왕으로 혹은 화하국왕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적녀국왕의 딸이고 비는 남해왕의 딸 아로부인이다. 정사에 즉위하여 23년간 다스렸다. 왕이 죽자 미소의 소정구 중에 수장하였다. 뼈를 빚어 동악에 안치하니 지금의 동악대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