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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마제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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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국왕

기본정보

신라 제6대 지마니질금의 왕비인 애례부인의 아버지.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마제국왕(磨帝國王)은 지마니질금의 왕비인 애례부인의 아버지이다. 다른 기록에서는 마제갈문왕(磨帝葛文王), 혹은 마제이찬(摩帝伊?)이라고도 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왕력편에서는 지마니질금의 왕비 애례부인의 아버지를 마제국왕(磨帝國王)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응하는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즉위년조에 따르면 왕비인 애례부인의 성은 김씨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갈문왕 마제(摩帝), 혹은 마제이찬(摩帝伊?)이라고 하였다. 두 사료 모두 왕비를 애례부인이라 하였으므로 그녀의 아버지를 표현한 마제국왕과 갈문왕 마제, 마제이찬은 모두 동일한 인물로 파악할 수 있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즉위년조에서는 마제 이찬의 딸이 지마이사금과 혼인하게 되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파사왕이 태자였던 지마이사금을 데리고 한기부(韓?部)를 지났는데, 이때 이찬 허루(伊? 許婁)와 마제 이찬(摩帝伊?)이 서로 딸을 내어 태자의 마음을 사려하였고, 결국 왕은 마제의 딸을 태자의 배필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파사이사금 대에는 한기부 지역에 마제와 허루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별개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이종욱, 1982)

반면 허루와 마제를 인명이 아닌 “부족국가(部族國家)”의 명칭으로 이해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허루와 마제는 고대국가로서의 신라가 성립하기 이전 경주지역에 존재했던 지역집단으로 후에 한기부가 되는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각개의 단위체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찬(伊?)은 부의 장(長)을 의미한다고 풀이하였다.(노태돈, 1975)

어쨌든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즉위년조의 기록에서는 허루와 마제 두 인물이 자신의 딸을 파사의 아들과 혼인시키는 문제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로 보아 허루와 마제는 관료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이사금과 거의 대등한 독립 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찬이라는 칭호 역시 제도화된 경위 또는 구체적 직책이라기보다는 독립성이 강한 세력이 지닌 위호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들에 대해 『삼국유사』 권1 왕력편의 “마제국왕”을 비롯하여 “갈문왕마제”(『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즉위년), “허루갈문왕”(『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파사이사금 즉위년), “허루왕”(『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즉위년) 등과 같은 표현이 보이는 것은 이러한 독립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하일식, 2006)

정리해보면 『삼국유사』 권1 왕력편에 보이는 “마제국왕”은 『삼국사기』의 마제이찬, 혹은 마제갈문왕과 동일인물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국왕(國王)” 또는 “왕(王)”으로 불릴 정도로 세력을 갖춘 독립성이 강한 존재였다.

참고문헌

노태돈, 1975, 「三國時代의 部에 關한 硏究」『한국사론』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이종욱, 1982, 『新羅國家形成史硏究』, 일조각.
하일식, 2006,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第六祇磨尼叱今[一作祇味 姓朴氏 父婆娑(王) 母史肖夫人 妃磨帝國王之女□禮<夫>人 一作愛禮金氏 壬子立 理二十三年 是王代滅音質國今安康 及押梁國今(梁)山]
제6대 지마니질금. [혹은 지미라고 한다. 성은 박씨이다. 아버지는 파사왕이고 어머니는 사초부인이다. 왕비는 마제국왕의 딸 □례부인인데 애례라고도 하며 김씨이다. 임자년(112)에 즉위하여 23년을 다스렸다. 이 왕대에 음질국, 지금의 안강과 압량국, 지금의 양산을 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