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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아달라니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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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라니질금

기본정보

신라의 제8대 왕.
생몰년 : ?-184년
재위기간 : 154년-184년

일반정보

신라 제8대 왕인 아달라이사금의 아버지는 일성왕(逸聖王)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의 딸 박씨이다.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으로 지마왕의 딸이다. 이 왕대에 신라는 계립령(?立嶺)과 죽령(竹嶺)의 길을 열었으며 왜국(倭國)과 통호하였다.

전문정보

아달라니질금은 신라의 제8대 왕이다. 『삼국유사』 권1 왕력편에서는 기사의 누락으로 그의 가계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즉위년(154)조에서는 일성왕의 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를 지소례왕의 딸인 박씨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으로 지마왕의 딸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3년(156)조에는 “계립령길을 열었다.(開?立嶺路)”라고 하였고 같은 왕 5년(158)조에는 “죽령을 열었다.(開竹嶺)”고 하였다. 이중 계립령과 죽령은 소백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교통로 중에서 가장 일찍 개척된 길이다. 이들 고갯길은 신라가 고구려의 남동쪽 지방과 백제의 북쪽 지방 특히 한강 하류지역으로 진출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었다.(최영준, 1990)

한편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5년(158)조에는 “왜인이 와서 교빙하였다.(倭人來聘)”라고 하였고, 같은 왕 20년(173)조에는 “왜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와서 예방하였다.(倭女王卑彌乎 遣使來聘)”라고 하여 아달라이사금대 왜국과의 교류 사실을 전하고 있다.(연민수, 1998)

이외에도 『삼국유사』 권1 기이1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조에 따르면 아달라왕 4년(157) 연오랑이 바다에서 해조를 캐던 중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 왕이 된 인물이 되었고, 연오랑의 부인인 세오녀는 남편을 기다리다 뒤따라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게 되어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참고문헌

최영준, 1990, 『嶺南大路』,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민수, 1998,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왕력)
第八阿達羅尼叱今 [又與倭國相□…□嶺□…□立峴今彌勒大院東嶺是也]
제 8대 아달라니질금. [ … 또 왜국과 더불어 서로 … 고개 … 입현은 지금의 미륵대원 동쪽 고개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연오랑 세오녀조)
延烏郞 細烏女
第八阿達羅王 卽位四年丁酉 東海濱 有延烏郞細烏女夫婦而居 一日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 而非眞王也] 細烏怪夫不來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是時 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求>二人 延烏曰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 朕之妃有所織細? 以此祭天可矣 仍賜其?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 又都祈野
연오랑과 세오녀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즉위한지 4년 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조를 캐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혹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 하고, 이에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일본제기(日本帝記)를 살펴보면, 그 앞이나 뒤에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자가 없으니, 이것은 변두리 고을의 소왕(小王)으로 진짜 왕(眞王)은 아니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나가 그를 찾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발을 발견했다. 역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 이전처럼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랍고 의아하여 왕에게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게 되었는데, 일자(日者)가 왕에게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은 일본으로 가버렸으므로 이런 괴변이 일어났습니다.”라 하였다. 왕은 사자를 보내 두 사람을 찾았는데, 연오가 말하기를 “내가 이 나라에 이른 것은 하늘이 그렇게 시킨 일이니, 지금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짐의 비가 짠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고 하고, 그 비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 아뢰어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이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는 귀비고(貴妃庫)라 하였고, 하늘에 제사지낸 곳은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