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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걸해니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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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해니질금

기본정보

신라 제16대 왕
생몰년 : ?-356
재위기간 : 310-356

일반정보

석씨왕으로, 아버지는 나해왕의 둘째 아들인 우로음 각간이다.

전문정보

나해이사금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각간(角干) 수로(水老) 또는 우로(于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나해-우로-걸해(흘해)로 계보가 이어지는데, 생존연대상으로 미루어 보아 우로와 흘해 사이에 2, 3세대가 더 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이종욱, 1980) 어머니는 조분이사금의 딸인 명원부인(命元夫人)이다. 『삼국유사』 왕력편과 같은책 권3 흥법3 원종흥법조(原宗興法條)에서는 “걸해(乞解)”라 하였는데,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에서는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이라고 하였다.

주목되는 사실은 제11대 조분왕 이후 제15대 기림왕까지 5명의 왕이 모두 세신(世神) 혹은 골정(骨正) 갈문왕의 가계인데도 불구하고, 기림왕이 아들 없이 죽자 이매(伊買)?나해왕의 가계에 속한 걸해(흘해)가 왕으로 추대된 것이다. 이는 결국 벌휴왕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이 석씨왕 시대에 왕이 될 자격을 가졌던 것을 말해준다.(이종욱, 1980) 걸해(흘해)의 왕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역시 아들이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걸해니질금(乞解尼叱今)대에 백제가 처음으로 침입해왔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의 문면과는 크게 다르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흘해이사금조에는 정작 백제와의 관련기사가 전무한 반면, 탈해이사금대를 비롯한 1-3세기 동안에 백제와 신라는 공방과 화친을 반복했던 것이다. 따라서 왕력편의 이 기록은 『삼국사기』 초기기사에 보이는 신라와 백제의 국가간 접촉 정보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이강래, 2005)

『삼국사기』를 분석해 보면 신라와 백제는 1-3세기대와 6-7세기대의 크게 두 차례의 교전기(交戰期)를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1-3세기대 신라와 백제 사이의 교전기사(交戰記事)는 다시 1기(64년-85년)와 2기(165년-283년)로 세분할 수 있다. 이때 백제와 교전한 세력은 1기에는 소백산맥 동쪽의 진한 사벌국(沙伐國)?감문국(甘文國) 세력으로, 2기에는 주요 거점(據點)의 재지세력(在地勢力)을 활용한 신라(新羅) 사로국(斯盧國)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박대재, 1999)

참고문헌

이종욱, 1980,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박대재, 1999, 「『三國史記』 初期記事에 보이는 新羅와 百濟의 戰爭」『韓國史學報』7.
이강래, 2005,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왕대력 비교 연구」『韓國史學報』21.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六 乞解尼叱今[昔氏 父于老音角干 卽奈解王第二子也 庚午立 治(四)十六年 是王代 百濟兵始來侵 己丑始築碧骨堤 周□萬七千二十六步 □□百六十六步 水<田>一萬四千七十□]
제16대 걸해니질금[석씨이다. 아버지는 우로음 각간으로 나해왕의 둘째 아들이다. 경오에 즉위하여 46년간 다스렸다. 이 왕대에 백제 군사가 처음으로 와서 침범하였다. 기축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쌓았다. 주위가 □만 7천 26보이고, □□백 66보이며, 논이 1만 4천 7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