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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나물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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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마립간

기본정보

신라 제17대 왕
생몰년 : ?-402
재위기간 : 356-402

일반정보

김씨로 왕위에 오른 두번째 왕이다. 아버지는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으로 또는 미추왕의 동생 말구(末仇) 각간(角干)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휴례부인(休禮夫人) 김씨이다.

전문정보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나물이사금 즉위조에 의하면, 나밀(那密) 혹은 나밀(奈密)이라고도 하였으며,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에서는 나물(?+?勿)이라 하였다. 『삼국사기』권3 신라본기3 나물이사금조에서는 나물을 “이사금(尼師今)”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 왕력편에서는 제17대 나물왕으로부터 제22대 지증왕에 이르는 6왕에 “마립간(麻立干)”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런데 『삼국유사』 권1 기이1 지철로왕조에는 “방언(邦言)에 왕을 마립간이라 한 것은 이 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즉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왕력에서는 나물왕 때부터 사용했는데, 기이편에는 지증왕때부터 사용했다고 하여 서로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태평어람(太平御覽)』 권781에 인용된 『진서(秦書)』에 기록된 “신라국왕누한(新羅國王樓寒)”을 마립간의 대칭으로 보아, 나물왕의 칭호는 이사금이 아니라 마립간이라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武田幸男, 1975) 혹은 당시에는 마립간과 이사금의 칭호가 병존하였다는 주장도 있다.(末松保和, 1954)

나물마립간 이후부터는 박(朴), 석(昔), 김(金)의 삼성(三姓)이 왕위를 교대로 계승하는 현상이 없어지고, 김씨에 의한 왕위의 독점적 세습이 가능해졌다. 제13대 미추왕도 물론 김씨로 왕이 된 바 있으나, 이는 석씨왕의 사위라는 자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17대 나물왕은 김씨 왕실을 크게 일으켜, 이후부터는 김씨왕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리하여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939)에서는 “운(運)은 속성은 김씨이니, 계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성한으로부터 내려와서 나물에서 일어났고, 근본에서 지말(枝末)까지 약 백세(百世) 동안 가유(嘉猷)를 끼쳤다. 대부(大父)는 산극(珊?)이니, 관직이 본국(本國)의 집사시랑(執事侍郞)에 이르렀다(運俗姓金氏 鷄林人也 其先降自聖韓興於?+?勿 本枝百世貽厥嘉猷 大父珊? 累官至本國執事侍郞)”고 기록되었으니, “성한(聖韓)”은 곧 “성한(星漢)”이며, “나물(?+?勿)”은 곧 나물왕으로 비정되므로, 김씨 계보에서 나물왕의 위치를 잘 알 수 있다.

나물왕의 출자에 대해서는 먼저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손자이며, 각간(角干) 말구(末仇)의 아들이라는 기록(『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 나물마립간 즉위조) 및 미소왕(未召王), 곧 미추왕의 동생인 말구 각간의 아들이라는 기록(『삼국유사』 왕력)이 있으며, 두 번째로 나물왕이 구도갈문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삼국유사』 왕력)도 있다.

여기서 미추왕(262-284)과 나물왕(356-402) 두 왕의 재위연대는 거의 100년 정도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미추왕과 나물왕이 형제로 되는 두 번째 설은 인정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여 첫 번째 것은 나물왕이 미추왕의 동생의 아들로 되어, 한 세대 아래가 된다. 미추의 동생인 말구가 미추보다 몇 년이나 더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추가 이사금의 자리에 오른 이듬해에 그의 아버지를 갈문왕에 봉한 것으로 보아, 그 출생시기는 미추왕 즉위(262) 이전일 것이다. 이는 말구가 태어나서 나물왕이 죽기까지 2세대의 존속기간이 140여년 이상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에 대한 해석은 먼저 기년상의 확대가 있었을 가능성을 들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구도에서 나물왕 사이의 세대수에 변경이 생겨난 때문일 가능성을 들 수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구도와 말구 사이에 몇 세대가 빠졌는지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이종욱, 1980)

미추왕과 나물왕은 모두 구도갈문왕의 직계 혈족집단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물왕은 미추왕과 친척이 되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미추왕의 직계 혈족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구도의 가계가 그 다음 세대에 이르러 미추왕계와 말구-나물왕계로 분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나물왕은 같은 구도갈문왕계의 타가계인 미추왕계 김씨 가계집단과 말구계 김씨 가계집단의 결혼을 통한 동맹세력의 대표로 왕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구체적인 계통을 알 수 없으나, 나물왕의 어머니 휴례부인(休禮夫人)도 역시 김씨족으로 되어 있다. 결국 나물왕은 당시 김씨족 가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나물왕은 석씨족인 흘해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석씨족 세력 대신에 정치적 힘으로 왕위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나물왕의 왕비는 미추왕의 딸인 보반부인(保反夫人) 또는 내례길포(內禮吉怖)이거나 내례희부인(內禮希夫人) 김씨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미추왕의 딸이 나물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보반부인은 미추왕의 딸이 아니라 손녀나 증손녀에 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나물왕의 계보는 확실히 알기 어려우나, 다만 미추왕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김씨족 안에서의 근친혼에 주목할 수 있다. 이는 나물왕 자신이 구도갈문왕의 가계에 속하는 자라는 자격으로 왕이 되었을 가능성과 더불어, 나물왕의 즉위에 있어 미추왕계 세력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해준다. 나물왕의 경우 그 자신이 김씨인데, 그의 어머니와 왕비 또한 모두 김씨이며, 거기에 더하여 왕비가 미추왕의 딸로 알려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이 때문에 흘해이사금이 후계자가 없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듯 하다.(이종욱, 1980)

나물마립간의 체제 내적인 정비는 중국과의 국제관계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여, 377년과 382년의 두 차례에 걸쳐서 고구려 사신의 안내를 받아 부견의 전진(前秦)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382년에 전진에 사신으로 파견된 위두(衛頭)와 전진의 왕 부견 사이의 대화는 당시 신라의 사정을 살피는 데 있어서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인용되어 있는 『진서』의 기사에 의하면 “그대가 말하는 해동(海東)의 일이 예와 같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라는 부견의 질문에 대하여 위두는 “중국에서 시대가 달라지고 명호(名號)가 바뀌는 것과 같으니 지금 어찌 같을 수 있으리오”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사회에 변화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라사회의 변화도 당연하다는 것으로, 신라의 국가체제 정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이병도, 1976)

참고문헌

末松保和, 1954, 『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武田幸男, 1975, 「新羅骨品制の再檢討」『東洋文化硏究所紀要』67.
이병도,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이종욱, 1980,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七 奈勿麻立干[一作□□王 金氏 父仇道葛文王 一作未召王之弟(末仇)角干 母(休禮夫人)金氏 丙辰立 理四十六年 陵在占星臺西南]
제17대 나물마립간[혹은 □□왕이라고도 하며, 김씨이다. 아버지는 구도갈문왕으로 또는 미소왕의 동생 말구 각간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휴례부인 김씨이다. 병진에 즉위하여 46년간 다스렸다. 능은 점성대의 서남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