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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실성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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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마립간

기본정보

신라 제18대 왕
생몰년: ?-417
재위기간: 402-417

일반정보

실주왕(實主王) 또는 보금(寶金)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미추왕의 동생 대서지각간(大西知角干) 또는 이찬(伊?) 대서지(大西知)라 하였고 어머니는 예생부인(禮生夫人) 석씨로 등야아간(登也阿干) 또는 석등보(昔登保) 아간(阿干)의 딸이다. 왕비는 아류부인(阿留夫人)으로 미추왕의 딸이다. 알지(閼智)의 후예이며, 나물마립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왕력에 따르면 실성이사금은 실주왕(實主王) 또는 보금(寶金)이라고도 하며, 아버지는 미추왕의 동생 대서지각간(大西知角干) 또는 이찬(伊?) 대서지(大西知)라 하였고 어머니는 예생부인(禮生夫人) 석씨로 등야아간(登也阿干) 또는 석등보(昔登保) 아간(阿干)의 딸이다. 왕비는 아류부인(阿留夫人)으로 미추왕의 딸이다. 알지(閼智)의 후예이며, 나물마립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실성이사금 즉위년조에는 “실성(實聖)은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이고 지혜가 밝고 사리에 통달하여 앞일을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나물왕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국인(國人)들이 실성을 세워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實聖身長七尺五寸 明達有遠識 奈勿薨 其子幼少 國人立實聖繼位)”라고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제18대실성왕(第十八代實聖王)조에서는 이 왕대에 평양주(平壤州)에 큰 다리를 세웠다고 하고, 뒤이어 “왕이 전왕(前王)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있음을 꺼려서 장차 해하려 하여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고 거짓 눌지를 맞는 체하니, 고구려인이 눌지가 현행(賢行)이 있음을 알고 창을 거꾸로 하여 왕을 죽이고 눌지를 세워 왕으로 삼고 갔다.(王忌憚前王太子訥祗有德望 將害之 請高麗兵而詐迎訥祗 高麗人見訥祗有賢行 乃倒戈而殺王 乃立訥祗爲王而去)”라고 하였다.

실성마립간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나물왕 37년(392)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졌다. 그가 인질이 된 것은 나물왕이 당시 기존세력의 대표격이던 이찬(伊?)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자 석등보(昔登保) 아간(阿干)의 외손자인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 기존세력 제거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김철준, 1975) 그러나 당시 신라가 대외적으로 백제와 왜(倭)의 침입에 의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신라왕은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고(「광개토왕릉비」) 고구려는 이를 기회로 경자(庚子)년에 군사를 내려 보내 나물을 고립시킨 후 당시 고구려에 인질로 가 있던 실성을 귀국시킨다. 실성의 즉위에는 이처럼 고구려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양정석, 1996) 또한 실성은 고구려의 도움과 함께 “국인(國人)”들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의 국인은 실성의 모계인 석씨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종욱, 1982)

실성마립간은 즉위 후 원년(402)에 나물왕의 아들인 미사흔(未斯欣)을 일본에 인질로 보내고, 11년(412)에는 역시 나물왕의 아들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냄으로써 나물왕계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또한 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405년 왜병이 명활성을 침입했을 때에는 친히 기병(騎兵)을 이끌고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실성이사금 16년조에 따르면 실성이사금 16년(417)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고 했으나,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눌지마립간 즉위년조에는 실성이 눌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실성은 나물왕이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던 것을 원망하여 그 아들인 눌지(訥祇)를 해쳐 원한을 갚으려 하였고 고구려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을 불러 눌지를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이 눌지에게 군자의 풍모가 있음을 보고는 눌지를 죽이지 않고 되돌아갔고 이에 눌지가 돌아와 실성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제18대실성왕(第十八代實聖王)조에도 실성왕이 눌지를 죽이려고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고 거짓으로 눌지를 맞는 척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눌지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도리어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웠다고 하였다. 고구려가 눌지를 도와 실성을 죽이고 눌지를 왕위에 세웠던 이유는, 실성이 신라의 국내외를 안정화하고 독자적 행보를 추구하는 것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료에는 고구려가 눌지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므로, 고구려가 평소 그들의 환심을 샀던 눌지의 정변 성공을 도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양정석, 1996; 장창은, 2004)

한편 실성마립간의 죽음으로 신라 왕실에서는 석씨세력이 완전히 축출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석씨로 대표되는 기존 집권세력의 몰락은 실성왕 15년(416) 석탈해와 관계있는 토함산(吐含山)이 무너졌다는 기사와 이후로 석씨 세력이 사료상에 나타나지 않는 점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양정석, 1998)

참고문헌

김철준, 1975, 『韓國古代社會硏究』, 지식산업사.
이종욱, 1982, 『新羅國家形成史硏究』, 일조각.
양정석, 1996, 「신라 麻立干期 왕권강화과정과 지방정책」『韓國史學報』창간호.
양정석, 1998, 「新羅 麻立干期 王의 統治形態-訥祗痲立干代를 中心으로」『新羅文化』15.
장창은, 2004, 「신라 訥祗王代 고구려세력의 축출과 그 배경」『韓國古代史硏究』33.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왕력)
第十八 實聖麻立干[一作實主王 又寶金 又<父>未鄒王弟大西知角干 (母)禮生夫人 昔氏 登也阿干(女)也 妃阿留夫人 壬寅立 治十五 王卽?述之父]
제18 실성마립간[보주왕 또는 보금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미추왕의 동생 대서지각간이고, 어머니는 예생부인 석씨로 등야아간의 딸이다. 왕비는 아류부인이다. 임인에 즉위하여15년간 다스렸다. 왕은 곧 치술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제18실성왕)
第十八實聖王
義熙九年癸丑 平壤州大橋成[恐南平壤也 今楊州] 王忌憚前王太子訥祗有德望 將害之 請高麗兵 而詐迎訥祗 高麗人見訥祗有賢行 乃倒戈而殺王 乃立訥祗爲王而去
제18대 실성왕
의희(義熙) 9년 계축(413)년에 평양주(平壤州)에 큰 다리가 이루어졌다.[남평양(南平壤)인 듯하니 지금의 양주(楊州)이다.] 왕은 전왕의 태자 눌지(訥祗)가 덕망이 있음을 꺼려 장차 그를 죽이고자 고구려의 군사를 청해서 거짓으로 눌지를 맞이하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눌지가 어진 행실이 있음을 보고, 이에 창을 돌려 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