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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전 흥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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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흥덕왕릉

기본정보

신라 제41대 흥덕왕의 능.
지정명 : 신라 흥덕왕릉
지정번호 : 사적 제30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

일반정보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의 능(陵)으로 왕과 왕비의 합장릉이다. 왕릉 주위에서 “흥덕(興德)”이라는 비편이 나와 흥덕왕릉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전문정보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으로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에 비정된다. 흥덕왕은『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흥덕왕 즉위년조의 “왕이 비를 그리워하여 못내 잊지 못하고 서운해하면서 즐거움을 멀리하였다.(王思不能忘 ?然不樂)”에서 보듯이 비를 총애하였고, 때문에『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흥덕왕 11년조 “장화왕비의 능에 합장하였다(合葬章和王妃之陵)”에서처럼 흥덕왕의 유언대로 그는 먼저 죽은 왕비의 능에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왕릉 소재지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왕력편에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으니 왕비 창화부인과 합장하였다(陵在安康北比火壤 與妃昌花合葬)”로 기록되어있다.

왕릉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이며, 왕릉의 봉분 직경은 20.77m, 봉분 높이는 5.97m이다. 봉분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이 남아 있으며, 왕릉 네 모서리에 각각 석사자상을 한 마리씩 배치하였고, 전방의 좌우에는 석인상, 호인상, 화표석 1쌍을 각각 마주보도록 배치하였다. 왕릉의 전방좌측의 동쪽에는 흥덕왕릉비를 세웠던 귀부가 남아있으나 파손이 있으며 비신(碑身)과 이수(?首)는 없어졌다. 왕릉 남쪽의 상석은 잔석(殘石)을 보강하여 탁자식으로 복원하였다.

1977년 8월에 실시한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사무소의 발굴조사 시 상당수의 비편이 발견되었는데, 이수의 제액(題額)에서 “흥덕(興德)”이 확인됨으로서 흥덕왕릉임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이 흥덕왕릉은 신라 왕릉 가운데 피장자가 확인되는 몇 안되는 능묘 중의 하나가 되었다.(이근직, 2006)

참고문헌

강우방, 1990, 『圓融과 造化-韓國古代彫刻史의 原理1』, 열화당
이근직, 2006, 『新羅 王陵의 起源과 變遷』,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二 興德王[金氏 名景暉憲德母第 妃昌花夫人 諡定穆王后 昭聖之女 丙午立 理十年 陵在<安>康北比火壤 與妃昌花合葬]
제42 흥덕왕[김씨이며, 이름은 경휘로 헌덕왕의 동복동생이다. 비는 창화부인으로 시호는 정목왕후이니 소성왕의 딸이다. 병오년에 즉위하여 10년간 다스렸다.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으니 비 창화부인과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