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삼국유사 키워드사전헌안왕

연관목차보기

헌안왕

기본정보

신라 제47대 왕
생몰년 : ?-861
재위 : 857-861

일반정보

김씨이며 이름은 의정으로, 문성왕의 유조에 의해 왕으로 즉위하였다. 왕권강화와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으며 민심 수습에 노력하였다.
헌안왕은 5년(861) 정월 29일에 죽어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

전문정보

신라 제47대 왕인 헌안왕은 문성왕의 유조(遺詔)에 의해 즉위하였다. 문성왕에게는 김안(金安)이라는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숙부인 헌안왕에게 왕위를 계승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의 상대등이었던 의정이 시중인 계명(啓明)과 결합하여 왕을 핍박하여 왕으로 하여금 의정에게 왕위를 계승시킨다는 유조를 내리게 하였다는 의견(윤병희, 1982)과 어렵게 쟁취한 균정계(제38대 원성왕(元聖王)의 아들인 예영(禮英)의 둘째아들 균정(均貞) 계열)의 왕통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취하여진 비상조치적인 성격으로 보는 견해(김창겸, 2005)가 있다.

문성왕대의 혼란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즉위한 헌안왕은 자신의 왕권강화와 원성왕계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자 노력하였다. 헌안왕은 즉위하자 곧 대사(大赦)를 단행하였다. 신라에서 신왕(新王)의 즉위 직후에 대사(大赦)를 행하는 것은 의례적인 행사의 하나이다. 헌안왕 역시 즉위행사를 행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려는 정치적 행위를 실시하였다.

헌안왕은 즉위 원년에 국정쇄신 및 자신의 왕권강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의미에서 상대등과 시중 등 중요관직을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였다. 또한 신궁(神宮) 제사를 행하였다.
아울러 불교 고승(高僧), 특히 보림사(寶林寺)와 연결하여 무주(武州)지역의 반신라적인 분위기를 무마하면서 왕실의 안정을 도모키도 하였다. 또 자연재해와 흉년으로 기근이 들자 진휼(賑恤)하면서 제방을 수리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인민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헌안왕은 왕권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왕족과 군신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또 화랑출신인 사위 응렴(膺廉)을 왕위계승자로 미리 정하여 왕위쟁탈전의 발생을 예방하였다. 그 결과 헌안왕은 이후 경문왕에 의한 개력정치의 추진과 일시적인 안정이 이루어 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헌안왕은 5년(861) 정월 29일에 죽어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

참고문헌

윤병희, 1982,「신라 하대 균정계의 왕위계승과 김양」『역사학보』96.
김창겸, 2005,「신라 헌안왕의 즉위와 그 치적」『신라문화』26.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七 憲安王 [金氏 名誼靖 神虎王之弟 母昕明夫人 戊寅立 理三年]
제47대 헌안왕 [김씨이며 이름은 의정이다. 신무왕의 동생이며 어머니는 흔명부인이다.
무인(858)에 즉위하여 3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