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삼국유사 키워드사전신덕왕

연관목차보기

신덕왕

기본정보

신라 제53대 왕
생몰년: ?-917
재위기간: 912-917

일반정보

신라 하대 최초의 박씨왕으로 이름은 경휘(景徽) 또는 수종(秀宗)이다. 아버지는 문원(文元) 이간이며 조부는 문관(文官) 해간, 의부(義父)는 예겸(銳謙) 각간이다. 어머니는 진화부인(眞花夫人)이며 외조부는 순홍(順弘) 각간, 외증조부는 원린(元隣) 각간이다. 왕비는 자성왕후(資成王后)이며, 제54대 경명왕(景明王)과 제55대 경애왕(景哀王)을 낳았다. 재위 6년(917)에 죽었는데, 화장하여 뼈를 잠현(箴峴) 남쪽에 묻었다.

전문정보

신덕왕의 가계에 대해서는『삼국유사』와『삼국사기』가 조금 차이를 보이고 있다.『삼국유사』왕력에서는 아버지는 문원(文元) 이간이며 조부는 문관(文官) 해간, 의부(義父)는 예겸(銳謙) 각간이라 하였다. 또 어머니는 진화부인(眞花夫人)이며 외조부는 순홍(順弘) 각간, 외증조부는 아달라왕(阿達羅王)의 원손(元孫)인 원린(元隣) 각간이라 하였으며, 왕비는 자성왕후(資成王后)로 의성(懿成)?효자(孝資)라고도 하였다. 한편『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신덕왕 즉위년조에서는 신덕왕이 박씨로서 아달라왕의 원손이며 아버지를 예겸(乂兼) 또는 예겸(銳謙)이라 하였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和夫人), 왕비는 김씨로서 헌강왕(憲康王)의 딸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신덕왕을 아달라왕의 외원손(外元孫)으로 언급하고 있지만,『삼국사기』에서는 친원손(親元孫)으로 보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신덕왕의 부계에 대한 설명도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신덕왕의 친부(親父)를 문원 이간, 의부(義父)를 예겸 각간이라 하였지만,『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신덕왕 즉위년조에서는 신덕왕의 아버지를 예겸(乂兼) 또는 예겸(銳謙)이라 하였으므로 이에 대해 『삼국유사』의 기록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신덕왕의 친부를 문원, 의부를 예겸이라 파악하고 두 사람을 각각 박씨와 김씨로 생각하기도 한다. 신덕왕이 의부계를 갖게 된 이유는 그의 어머니인 진화부인이 처음에 문원과 혼인하여 신덕왕을 낳은 뒤, 예겸에게 개가하여 신덕왕은 예겸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고, 아울러 김씨가문 혈족의 일원으로 신분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신덕왕은 예겸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헌강왕의 딸과 혼인하였고, 효공왕과는 처남의 관계로 맺어져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고 보았다.(김창겸, 2003)

『삼국사기』에는 예겸의 성씨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김씨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삼국사기』의 기재 방식에 의하면 왕가에 속한 김씨 귀족에 대해서는 대부분 성을 모칭(冒稱)하지 않고 이름만 쓰는 것이 관례이므로, 예겸의 성도 박씨가 아닌 김씨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겸은 김씨인데도 신덕왕의 성씨가 박씨인 것은 어머니 쪽의 성을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末松保和, 1954)

한편 신덕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의 출자 또는 그의 모계의 출자를 아달라왕에 결부시키고 그의 가문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작을 꾸민 것으로 파악한 견해가 있다. 신라는 하대로 갈수록 진골 왕종(王種)이 점차 절멸해갔고 근친결혼과 치열한 왕위 계승 다툼이 그러한 현상을 부채질하였다. 그리하여 효공왕이 죽은 뒤에 내물왕계에 속하는 김씨 가문에는 진골로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자가 없어졌으므로 진골은 아니지만 왕과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계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신덕왕이었다는 것이다. 신덕왕은 처음부터 김씨 가문에 속하는 자가 아니고 박씨 가계의 인물이며 그가 원래 미미한 골품에 속했기 때문에 그를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작을 가한 결과가 『삼국유사』에서처럼 장황한 가계 설명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이종항, 1975)

『삼국유사』왕력에는 신덕왕의 부계와 모계를 모두 박씨라고 하면서 아달라왕의 직계후손인 것처럼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달라이사금에게는 아들이 없다고 하여 후손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덕왕을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박씨세력 집단의 후손 중 한 사람인데, 일단 왕위에 오른 뒤 그의 계통을 찾다보니 박씨왕으로 마지막에 재위하였던 아달라왕에게 연결되었던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이종욱, 1980) 이처럼 신덕왕의 가계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지니고 있으나, 일반적으로『삼국사기』의 기록을 많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신덕왕의 즉위를 박씨 왕계의 재등장으로 보기보다는, 헌강왕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헌강왕계를 이어받았다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이에 따르면 효공왕에게 자손이 없어 국인이 신덕왕을 추대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들면서 이것이 헌강왕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이배용, 1985)

이와는 다르게, 신덕왕의 즉위에 대해서 상대말(上代末)의 국가적 위기상황과 그 극복이라는 과제가 진골왕의 등장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그와 유사한 신라말의 위기상황 속에서 김씨왕실을 대신할 박씨왕실의 등장으로 사태를 극복하려는 의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결과 신덕왕이 즉위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즉 박씨왕가의 등장은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은 성골왕실의 한계성을 진골왕실이 극복하고 삼국통일을 이루었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박씨왕가의 등장이라는 왕통의 변화로 재현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전기웅, 1989)

또는 신덕왕의 즉위와 관련하여 국인으로 표현되는 지지세력의 역할을 보다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원래 신덕왕은 효종(孝宗)과 마찬가지로 다 헌강왕의 사위였으나 계강(繼康), 예겸(乂兼) 등 그를 지지한 귀족 세력에 의해 효종을 누르고 즉위한 것이며, 그 자체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조범환, 1991)

한편 신덕왕의 즉위는 신라 하대에 김씨세력 안에서 왕위계승전이 벌어질 때 박씨세력이 상대적으로 세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즉 신라 하대의 왕위계승전으로 인하여 김씨세력이 분열?제거되고 지방으로 쫓겨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 힘을 유지하던 박씨족이 왕을 배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씨족의 왕위계승은 김씨족 세력의 상대적인 축소,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나아가 중앙귀족 전체의 세력 축소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신덕왕은 김씨족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박씨족의 세력을 바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이종욱, 1999)

신덕왕의 즉위를 골품제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원래 진골이 아니었던 그가 즉위한 것은 이제 신라 왕실의 왕위계승상에 있어 골품제 규정이 기본요건으로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나아가서는 골품제 자체가 소멸되었음을 나타낸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김창겸, 2003)

신덕왕은 왕비 자성왕후와의 사이에서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과 제55대 경애왕(景哀王)이 낳았다. 신덕왕은 재위 5년(917)에 죽었는데 화장하여 뼈를 잠현(箴峴) 남쪽에 묻었다.『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신덕왕 6년조 7월에서는 왕이 죽으니 죽성(竹城)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末松保和, 1954,『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이종항, 1975,「新羅의 下代에 있어서의 王種의 絶滅에 대하여」『法史學硏究』2.
이종욱, 1980,『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 영남대학교 출판부.
이배용, 1985,「新羅下代 王位繼承과 眞聖女王」『千寬宇先生 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정음문화사.
전기웅, 1989,「新羅 下代末의 政治社會와 景文王家」『釜山史學』16.
조범환, 1991,「新羅末 朴氏王의 登場과 그 政治的 性格」『歷史學報』128.
이종욱, 1999,『新羅骨品制硏究』, 일조각.
김창겸, 2003,『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十三 神德王 [朴氏 名景徽 本名秀宗 母眞花夫人 夫人之父順弘角干 追諡成<武>大王 祖元隣角干 乃<阿>達(羅)王之遠孫 父<文>元伊干 追封興廉大王 祖文官海干 義父銳謙角干 追封宣成大王 妃資成王后 一云懿成 又孝資 壬申立 理五年 火葬 藏骨于箴峴南]
제53 신덕왕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로 본래 이름은 수종이다. 어머니는 진화부인이고, 부인 의 아버지는 순홍 각간이니 시호를 성무대왕으로 추봉하였으며, 할아버지는 원린 각간으로 곧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아버지는 문원 이간이고 흥렴대왕으로 추봉되었고, 할아버지는 문관 해 간이며, 의부는 예겸 각간이고 선성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왕비는 자성왕후로 혹은 의성 또는 효자라고도 한다. 임신년에 즉위하여 5년간 다스렸다. 화장하여 뼈는 잠현 남쪽에 묻었다.]

第五十四 景明王 [朴氏 名昇英 父神德 母資成 妃長沙宅大尊角干 追封聖僖大王之子 大尊卽水宗伊干之子 丁丑立 理七年 火葬皇福寺 散骨于省等仍山西]
제54 경명왕 [박씨이며 이름은 승영이다. 아버지는 신덕왕이고,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다. 왕 비는 장사댁으로 대존각간, 추봉된 성희대왕의 자식이며, 대존은 곧 수종 이간의 아 들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 서쪽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