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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경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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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명왕

기본정보

신라 제54대 왕.
생몰년 : ?-924
재위기간 : 917-924

일반정보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神德王)이며 어머니는 자성왕후(資成王后) 또는 의성왕후(義成王后), 왕비는 대존각간(大尊角干)의 딸이다. 경명왕대는 918년에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여 후삼국간의 쟁패전이 가속화되었고, 같은 해에 현승(玄昇)이 모반을 일으키는 등 어지러운 시기였다. 경명왕은 재위 7년(924)에 죽었는데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뿌렸다.

전문정보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神德王)이며 어머니는 자성왕후(資成王后), 왕비는 대존각간(大尊角干)의 딸이다.『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 즉위년조에는 경명왕을 신덕왕의 태자라고 하고, 어머니를 의성왕후(義成王后)라고 하였다.

『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신덕왕 원년조에는 신덕왕이 아들 승영을 태자로 삼았음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을 신덕왕의 왕권강화 노력으로 파악한 견해가 있다. 즉 신라 하대의 왕들이 왕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정치적 배경에 의해 왕의 동생이나 조카를 태자로 책봉했던 경우와는 달리, 신덕왕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여 왕권강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덕왕이 비록 김씨왕통을 압도하고 왕이 되었을지언정 그 스스로 부자계승의 규범을 수립하려고 노력한 모습이었다고 하였다.(김창겸, 2003)

『삼국유사』왕력에는 경명왕이 장사택(長沙宅) 출신의 여자와 혼인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장사택은 35금입택(金入宅) 중의 하나로, 유력한 진골 귀족 가문으로 추측된다. 신덕왕이 장사택 출신의 여자와 혼인한 것은 김씨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조범환, 1991)

『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 원년 8월조에는 왕의 동복동생 위응(魏膺)을 상대등에 임명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취한 조처라고 이해되며 신라 말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경명왕은 다른 김씨왕족들의 도전에 대비하여 자기의 친족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위응은 경명왕의 왕권을 위하여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며, 경애왕(景哀王=위응)의 즉위는 경명왕의 동모제(同母弟)라는 혈연적 요건이 우선적으로 작용한 왕위계승이었다고 하였다.(김창겸, 2003)

경명왕대는 918년에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여 후삼국의 쟁패전이 가속화되었고, 같은 해에 현승(玄昇)이 모반을 일으키는 등 대체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그러나 대외면에서는 경명왕 4년(920) 신라는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친선 관계를 맺었다. 이는 반란세력과의 대결보다는 그들의 위치를 인정함으로써 신라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고려를 통하여 후백제의 군사적 위협도 견제할 수 있는 기초를 닦으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경명왕 7년(923) 7월과 8년(924) 정월, 6월에 는 후당(後唐)에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이는 신라왕권의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신덕왕이 사신을 후당에 파견하지 못한 것은 박씨왕권이 약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경명왕은 치세 말년에 후당에 계속 사신을 보내고 있어 그만큼 박씨왕권이 안정된 것으로 이해된다.(조범환, 1991)

『삼국유사』왕력에는 경명왕이 재위 7년(924)에 죽었는데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뿌렸다고 하였으나,『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 8년조에는 왕이 8월에 죽어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동복동생 위응이 즉위하여 신라 제55대 경애왕이 되었다.

참고문헌

이기동, 1978,「新羅 金入宅考」『震檀學報』45.
조범환, 1991,「新羅末 朴氏王의 登場과 그 政治的 性格」『歷史學報』128.
김창겸, 2003,『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十四 景明王 [朴氏 名昇英 父神德 母資成 妃長沙宅 大尊角干 追封聖僖大王之子 大尊卽水宗伊干之子 丁丑立 理七年 火葬皇福寺 散骨于省等仍山西]
제54경명왕 [박씨이며 이름은 승영이다. 아버지는 신덕왕이고,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다. 왕 비는 장사택으로 대존각간, 즉 추봉된 성희대왕의 자식이다. 대존은 곧 수종 이간의 아들 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 서쪽에 뿌 렸다.]

第五十五 景哀王 [朴氏 名魏膺 景明之母弟也 母資成 甲申立 理<三>年]
제55경애왕 [박씨이며 이름은 위응이다. 경명왕의 동복동생이며, 어머니는 자성왕후이 다. 갑신년에 즉위하여 3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