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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기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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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왕

기본정보

백제 제3대 왕
생몰년: ?-128
재위년: 77-128

일반정보

백제의 제3대 왕으로 아버지는 제2대 다루왕(多婁王)이다. 다루왕 6년(33) 태자(太子)가 되었고, 다루왕이 죽자 왕위에 올라 77년부터 128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51년만에 죽자 아들 개루왕(蓋婁王)이 즉위하였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3대 왕으로 제2대 다루왕(多婁王)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 기루왕 즉위년조에는 “다루왕의 맏아들이다.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하여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다루왕이 재위 제6년에 태자로 삼았고, 50년에 이르러 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多婁王之元子 志識宏遠 不留心細事 多婁王在位第六年立爲太子 至五十年王薨 繼位)”라고 하였다.

현재 전하는 백제왕계가 백제 멸망 이후에 조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기루왕의 존재도 허구로 설정된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今西龍, 1934) 그러나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이해하면서, 기루왕의 존재를 사실로 인정하기도 한다. 다만 온조왕(溫祚王)부터 사반왕(沙泮王)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부자상속(父子相續)은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천관우, 1989), 다루왕과 기루왕대 보이는 태자책립(太子冊立) 또한 역사적 사실로 믿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이기백, 1996)

한편 백제초기에 보이는 왕계를 해씨(解氏)를 칭한 비류세력과 부여씨(扶餘氏)를 칭한 온조세력으로 나누고, “婁”자의 왕명을 가지고 있는 다루왕, 기루왕, 개루왕을 해씨(解氏) 출신으로 파악한 견해가 있다. 그 이유는 북부여왕 해부루(解夫婁), 백제의 비류(沸流), 고구려의 유류(孺留), 대해주류(大解朱留) 등 “婁”나 “留”로 끝나는 왕명을 가진 왕들의 성씨가 모두 해씨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기루왕은 해씨의 비류계 세력으로 이들은 백제 초기에 온조왕, 초고왕의 부여씨 세력과 함께 연맹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노중국, 1988)

기루왕 29년(105)에는 사신(使臣)을 신라에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고 하는데 같은 내용이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26년(105) 춘정월조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37년(113)에도 사신을 신라에 보내 예방(禮訪)하였고, 49년(125)에는 신라가 말갈(靺鞨)의 침략을 받아 백제에 구원을 요청하자 왕이 5명의 장군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루왕대는 백제와 신라의 평화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외 『삼국사기』 백제본기 다루왕조의 기사는 대부분 천문 및 기상이변, 지진, 가뭄 등의 기사로 채워져 있는데, 이를 기루왕 치세가 큰 시련기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신형식, 1982)

기루왕은 재위 51년만인 128년에 죽었고 그 뒤를 이어 아들 개루왕이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왕력에는 기루왕이 55년간 다스렸다고 하였으나, 이는 왕력에서 치세년 산정을 잘못한 것으로 본래는 51년이라 표기되어야 맞다.(이강래, 2005)

참고문헌

今西龍, 1934, 『百濟史硏究』, 近澤書店.
신형식, 1982, 『三國史記硏究』, 일조각.
노중국, 1988, 『百濟政治史硏究』, 일조각.
천관우,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일조각.
이기백, 1996, 『韓國古代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이강래, 2005,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왕대력 비교 연구」 『韓國史學報』21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 己婁王 [多婁子 丁丑立 理五十五年]
제3 기루왕 [다루의 아들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55년간 다스렸다.]

第四 蓋婁王 [己婁子 戊辰立 理三十八年]
제4 개루왕 [기루의 아들이다. 무진년에 즉위하여 38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