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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개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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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루왕

기본정보

백제 제4대 왕
생몰년: ?-166
재위년: 128-166

일반정보

백제의 제4대 왕으로 아버지는 제3대 기루왕(己婁王)이다. 기루왕의 뒤를 이어 128년부터 166년까지 재위하였다. 아들로는 제5대 초고왕(肖古王)과 제8대 고이왕(古爾王)이 있으나 고이왕이 개루왕의 실제 아들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4대 왕으로 제3대 기루왕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 개루왕 즉위년조에는 “기루왕의 아들이다. 성품이 공순하고 행실이 올발랐다. 기루가 재위 52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蓋婁王 己婁王之子 性恭順有操行 己婁在位五十二年薨 卽位)”고 하였다.

현재 전하는 백제왕계가 백제 멸망 이후에 조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제21대 개로왕(蓋鹵王)의 이칭인 근개루왕(近蓋婁王)의 존재에 주목하면서 개루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今西龍, 1934) 그러나 이후 “近”자를 “相似” 혹은 “큰”의 뜻으로 보아 선대의 왕을 추념(追念)하기 위해 붙인 왕명으로 이해하고, 개루왕이 조작된 왕명이 아님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천관우, 1989)

백제 시조 온조왕(溫祚王) 이후 다루왕(多婁王), 기루왕(己婁王), 개루왕(蓋婁王)이 모두 “婁”자의 왕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이들을 해씨(解氏) 출신으로 파악한 견해도 있다. 고구려와 백제에도 북부여왕 해부루(解夫婁), 백제의 비류(沸流), 고구려의 유류(孺留), 대해주류(大解朱留) 등 “婁”나 “留”로 끝나는 왕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왕의 성씨가 모두 해씨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온조-초고-구수계의 부여씨 세력과 구분되는 비류계 세력이라고 하였다.(노중국, 1988)

개루왕대에는 재위 5년(132)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축조하였고, 28년(155)에는 신라의 아찬(阿?) 길선(吉宣)이 모반하다가 백제로 도망오자 이를 보내지 않았다가 신라의 침공을 받기도 하였다. 기루왕 9년(85) 신라와의 전투 이후 80여년 간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 충돌이 없는 평화기였는데, 이 평화기가 깨어지는 계기가 바로 길선의 도주사건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기록이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12년(165)조에 전하고 있어 백제본기와는 10년의 차이가 난다. 둘 중 어느 기록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신라측의 자료가 백제본기에 기계적으로 삽입되면서 발생한 오류라고 보고 있다.(이강래, 1996)

한편 개루왕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이 『삼국사기』 권48 열전8 도미(都彌)조에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개루왕은 도미의 아내가 용모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이를 취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보이는 개루왕을 종래에는 백제 제21대 개로왕(蓋鹵王)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개로왕은 근개루(近蓋婁)라는 이칭을 가지고 있었고, 백제본기의 개로왕조와 열전 도미조에 보이는 개로왕의 분위기가 서로 유사하며 도미부부가 개루왕을 피해 고구려로 도망가는 경로 또한 5세기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고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미전의 기록을 재해석하면서 2세기대의 개루왕(蓋婁王)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제4대 개루왕 또한 신라와의 전쟁을 도발하는 등 무력적인 군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도미부부는 해로(海路)를 통해 도망하였으므로 도미전의 내용을 2세기대의 일로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박대재, 2007)

개루왕은 재위 38년만인 166년에 죽었고, 그 뒤를 이어 아들 초고왕이 즉위하였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에는 제8대 고이왕(古爾王)을 초고왕의 동복동생(母弟)이라 하였고,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즉위년조에도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第二子)”이며, 초고왕의 동복동생이라고 기록하였다. 즉 이에 따르면 개루왕은 초고왕 외에 고이왕도 아들로 둔 셈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고이왕이 개루왕 말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다음 제5대 초고왕의 재위년 48년, 제5대 구수왕의 재위년 20년, 고이왕 재위년 53년을 합하면 고이왕은 123년이나 생존한 것이 되는데,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김철준, 1990)

이에 대해서는 “母弟”를 동복동생이 아닌 “어머니의 동생”으로 해석하면서 고이왕이 초고왕과는 계통을 달리하는 우태-비류계 출신이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천관우, 1989) 이와는 달리 고이왕이 특별한 이유 때문에 개루왕의 왕계에 의도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즉 고이왕을 초고왕의 모제라고 한 것은 계보적인 의제(擬制)일뿐 믿을 수 없는 내용이며, 고이왕을 계보상 구수왕 혹은 사반왕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왜곡?조작했다는 것이다.(이기동, 1996) 또한 “둘째 아들(第二子)”이라는 표현은 전왕(前王)과의 혈연관계가 없는 왕이 즉위하였을 경우 부회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도(강종원, 2002) 고이왕이 개루왕의 아들이었다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믿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今西龍, 1934, 『百濟史硏究』, 近澤書店.
노중국, 1988, 『百濟政治史硏究』, 일조각.
천관우,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일조각.
김철준, 1990, 『韓國古代社會硏究』, 서울대 출판부.
이강래, 1996, 『三國史記 典據論』, 민족사.
이기동, 1996, 『百濟史硏究』, 일조각.
강종원, 2002, 『4세기 백제사 연구』, 서경.
박대재, 2007, 「『三國史記』 都彌傳의 世界」 『先史와 古代』27.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 蓋婁王 [<己>婁子 戊辰立 理三十八年]
제4 개루왕 [기루의 아들이다. 무진년에 즉위하여 38년간 다스렸다.]

第五 肖古王 [一作素古 蓋婁子 丙午立 理五十年]
제5 초고왕 [소고라고도 하며 개루의 아들이다. 병오년에 즉위하여 50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