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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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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왕

기본정보

백제 제5대 왕
생몰년: ?-214
재위년: 166-214

일반정보

백제의 제5대 왕으로 초고(肖故) 또는 소고(素古)이라고도 하며 제4대 개루왕(蓋婁王)의 아들이다. 개루왕의 뒤를 이어 166년부터 214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38년 만에 죽자 아들 구수왕(仇首王)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5대 왕으로 제4대 개루왕(蓋婁王)의 아들이다. 『삼국유사』 왕력과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즉위년조에는 초고왕(肖古王) 또는 소고(素古)라고 하였으며 『삼국유사』 왕력의 고이왕조에는 초고(肖故)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권9 신공왕후 54(254)년조에도 “초고(肖古)”가 보이지만 이는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을 가리키는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고왕 즉위년조에는 “개루왕(蓋婁王)의 아들이고 개루가 재위 3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蓋婁王之子 蓋婁在位三十九年薨 嗣位)”고 하여 『삼국유사』 왕력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만 그 재위년이 왕력과 1년 차이가 나는 것은 왕력에서 다음왕이 즉위한 해를 전왕의 재위년으로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강래, 2005)

초고왕에 대해서는, 초고왕?구수왕?개루왕 등의 왕명에 “近”자가 붙은 근초고왕?근구수왕?근개루왕(개로왕) 등의 왕명이 후대에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를 허위의 존재로 보는 견해가 있다. 현재 전하는 백제왕의 세계는 백제 멸망 이후에 조작되었다는 것이다.(今西龍, 1934) 그러나 이후 “近”자를 “相似” 혹은 “큰”의 뜻으로 보아 선대의 왕을 추념(追念)하기 위해 붙인 왕명으로 이해하고, 초고왕이 조작된 왕명이 아님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천관우, 1989)

또한 역시 초고왕의 존재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백제 초기의 왕계를 온조(溫祚)-초고(肖古)-구수(仇首)의 부여씨(扶餘氏) 왕계와 비류(沸流)-다루(多婁)-기루(己婁)-개루(蓋婁)의 해씨(解氏) 왕계로 나누고, 초고왕은 부여씨로는 최초로 연맹체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연맹장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23년(188)조에 궁실(宮室)을 중수(重修)하였다고 한 것은 부여씨의 왕위세습 후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한 조처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초고왕 48년(213) 가을 7월에는 서부인(西部人) 회회(茴會)가 흰 사슴을 포획하여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초고왕대에 지배영역의 확대가 꾸준히 추진된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노중국, 1988)

초고왕대에는 재위 2년(167) 신라의 서쪽 변경을 습격하여 남녀 1천명을 사로잡은 것을 시작으로 모산성(母山城), 원산향(圓山鄕), 와산(蛙山), 요거성(腰車城) 등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이 시기 백제와 신라의 주된 전장은 예천, 옥천, 보은을 잇는 소백산맥 일대였다. 또한 초고왕 45년(210)에는 말갈(靺鞨)이 사도성(沙道城)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하였고 49년에는 말갈의 석문성(石門城)을 공격해 빼앗기도 하였다.

초고왕은 재위 38년만인 214년 겨울 10월에 죽었고, 그 뒤를 이어 아들 구수왕이 즉위하였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에는 제8대 고이왕(古爾王)을 초고왕의 동복동생(母弟)이라 하였고,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즉위년조에도,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第二子)”이며 초고왕의 동복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기록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는데, 고이왕이 개루왕 말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다음 제5대 초고왕의 재위년 48년, 제5대 구수왕의 재위년 20년, 고이왕 재위년 53년을 합하면 고이왕은 123년이나 생존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김철준, 1990)

따라서 “母弟”를 동복동생이 아닌 “어머니의 동생”으로 해석하면서 고이왕이 초고왕과는 계통을 달리하는 우태-비류계 출신이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천관우, 1989) 또는 고이왕이 특별한 이유 때문에 개루왕 및 초고왕의 계보에 의도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즉 고이왕을 초고왕의 모제라고 한 것은 계보적인 의제(擬制)일뿐 믿을 수 없는 내용이며, 고이왕을 계보상 구수왕 혹은 사반왕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왜곡?조작했다는 것이다.(이기동, 1996) 또한 “둘째 아들(第二子)”이라는 표현은 전왕과의 혈연관계가 없는 왕이 즉위하였을 경우 부회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강종원, 2002), 고이왕이 개루왕의 아들이며 초고왕의 동복동생이었다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믿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今西龍, 1934, 『百濟史硏究』, 近澤書店.
노중국, 1988, 『百濟政治史硏究』, 일조각.
천관우,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일조각.
김철준, 1990, 『韓國古代社會硏究』, 서울대 출판부.
이기동, 1996, 『百濟史硏究』, 일조각.
강종원, 2002, 『4세기 백제사 연구』, 서경.
이강래, 2005,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왕대력 비교 연구」 『韓國史學報』21.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 肖古王 [一作 素古 蓋婁子 丙午立 理五十年]
제5 초고왕 [소고라고도 하며 개루의 아들이다. 병오년에 즉위하여 50년간 다스렸다.]

第六 仇首王 [一作 貴須 (肖古)之子 甲午立 理二十一年]
제6 구수왕 [귀수라고도 하며 초고왕의 아들이다. 갑오년에 즉위하여 21년간 다스렸다.]

第八 古爾王 [肖故之母弟 甲寅立 理五十二年]
제8 고이왕 [초고의 동복동생이다. 갑인년에 즉위하여 52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