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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비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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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왕

기본정보

백제 제11대 왕
생몰년: ?-344
재위기간: 304-344

일반정보

백제의 제11대 왕으로 제6대 구수왕(仇首王)의 둘째 아들이며, 사반왕(沙伴王)과는 형제이다. 분서왕(汾西王)의 뒤를 이어 304년부터 344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41년에 죽자 계왕(契王)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11대 왕으로 제6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다. 『삼국사기』권24 백제본기2 비류왕 즉위년조에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남을 사랑하였으며, 또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민간에 있었는데, 칭찬이 널리 퍼졌다. 분서왕이 죽었을 때 비록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여 신하와 백성들이 추대하여 즉위하였다(性寬慈愛人 又强力善射 久在民間 令譽流聞 及汾西之終 雖有子 皆幼不得立 是以 爲臣民推戴卽位)”고 하였다.

비류왕의 왕위계승에 대한 연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첫째, 비류왕의 즉위사실을 허구로 보는 견해로, 이는 『삼국사기』초기기록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어 근초고왕대 이전의 왕계를 허구 내지는 조작으로 보아 인정하지 않고 있다.(津田左右吉, 1921; 太田亮, 1928). 둘째, 비류왕의 즉위를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로 비류왕의 즉위를 고이계에서 다시 초고계로의 왕위계승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비류왕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비류왕이 구수왕의 제 2자(子)라고 하는 기록에는 의문을 갖는다.(이기백, 1996; 이기동, 1982; 강종원, 2002) 셋째, 비류왕의 존재와 왕위계승에 따른 기록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노중국, 1978; 최재석, 1986; 양기석, 1990)

여기서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 아들일 경우에는 고이왕과 마찬가지로 생존년수에 문제가 있다. 곧, 구수왕(214-234)이 234년에 사망했으므로 아들인 비류왕이 그 해에 출생했다고 하더라도 70살에 왕위에 오르고 41년간 재위하다가 344년에 110세로 죽은 것이 된다.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백제본기의 장자(長子)상속의 틀 속에서 둘째 아들은 흔히 자신의 실력(武力)으로 왕위를 차지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면서 비류왕이 구수왕의 실제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김기섭, 200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하여 구수왕과 계보를 연결시킨 것은 고이왕과 마찬가지로 전(前)왕 계보와 결부시키고자 하는 계보상(系譜上)의 의제(擬制)때문이라고 본다.(이기동, 1982)

참고문헌

津田左右吉, 1921, 「百濟に關する日本書紀の記載」『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
太田亮, 1928, 『日本古代史新硏究』.
이기백, 1996, 『韓國古代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최재석, 1986, 「百濟의 王位繼承」『韓國學報』45.
노중국, 1988, 『百濟史硏究』, 일조각.
양기석, 1990, 「百濟 專制王權 成立過程硏究」, 단국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기동, 1996, 『百濟史硏究』, 일조각.
강종원, 2002, 『4세기 백제사연구』, 서경.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一 比流王 [仇<首><第>二子 沙泮之弟也 甲子立 治四十年]
제11 비류왕 [구수의 둘째 아들이다. 사반의 아우이다. 갑자년에 즉위하여 40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