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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아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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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신왕

기본정보

백제 제17대 왕
생몰년: ?-405
재위기간: 392-405

일반정보

백제의 제17대 왕으로 제15대 침류왕(枕流王)의 아들이다. 제16대 진사왕(辰斯王)의 뒤를 이어 392부터 405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14년에 죽자 아들인 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17대 왕으로 제15대 침류왕의 아들이다. 『삼국사기』에는 권25 백제본기3 안신왕조에는 아방(阿芳), 『일본서기(日本書紀)』응신기에는 아화(阿花)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신왕과 관련하여,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 아신왕 즉위년조에는 침류왕의 아들로, 『삼국유사』권1 왕력에는 진사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신왕의 즉위에 대해 『삼국사기』아신왕 즉위년조에는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왕이 죽었을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진사가 왕위를 이었는데 8년에 죽자 즉위하였다(枕流王之元子…王薨時年少 故叔父辰斯繼位 八年薨 卽位)”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응신기 3년조에는 “백제의 진사왕이 왕위에 올라 귀국 천황에게 실례하여 기각숙녜, 우전시벌숙녜, 석천숙녜, 목토숙녜를 보내 무례한 상황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녜 등은 다시 아화를 세워 왕으로 삼고 돌아왔다(是歲 百濟辰斯王立之 失禮於貴國天皇 故遣紀角宿? 羽田矢代宿? 石川宿? 木?宿? ?讓其无禮狀 由是 百濟國殺辰斯王以謝之 紀角宿?等 便立阿花爲王而歸)”고 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진사왕의 죽음 이후 그를 왕위에 앉힌 주체는 기각숙녜(紀角宿?) 등으로 나온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기사대로라면 아신왕은 왜(倭)의 문책사에 의해 옹립된 셈이 된다. 그러나 왜에 의한 옹립은 사실로 보기는 어려우며, 기각숙녜(紀角宿?)를 위시한 왜인 등은 실존성이 의심스러운 존재이다. 또한 아신왕의 옹립 자체가 진사왕의 왜에 대한 무례의 문책 행위로 행해진 것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진사왕의 사망은 왜와 무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백제가 진사왕을 죽였다’는 표현은 정변의 결과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 결과 이루어지는 아신왕의 즉위 역시 진사왕을 암살한 세력에 의해 행해졌을 것으로 본다.(문동석, 2007)

아신왕은 즉위 후 먼저 왕권의 정통성을 과시하고 지배세력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시조묘인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함과 동시에 남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다. 동명묘 제사는 한성시대에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왕은 시조에 대한 제사 뿐 만 아니라 당시의 천지제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제전을 왕이 주제함은 동명의 후예로서의 신성한 권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지배권위를 인정받고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노명호, 1981)

아신왕 4년(395)에는 고구려를 공격 하였으나, 고구려왕 담덕(談德:광개토왕)이 군사 7,000을 거느리고 항거하여 크게 패하여 죽은 사람이 8,000명이었다고 한다. 왕이 다시 보복하려 친히 군사 7,000명을 이끌었으나, 큰 눈을 만나 회군하였다.이후에도 고구려를 공격하려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노명호, 1981, 「百濟의 東明神話와 東明廟」『歷史學硏究』10, 전남대학교 사학과.
문동석, 2007, 『백제지배세력연구』,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七 阿莘王 [一作<阿>芳 辰斯子 壬辰立 治十三年]
제17 아신왕 [아방이라고도 한다. 진사의 아들이다. 임진년에 즉위하여 13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