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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전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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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왕

기본정보

백제 제18대 왕
생몰년: ?-420
재위기간: 405-420

일반정보

백제의 제18대 왕으로 제17대 아신왕(阿莘王)의 아들이며, 진지(眞?) 또는 직지(直支), 영(映)이라고 한다. 비(妃)는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다. 아신왕의 뒤를 이어 405년부터 420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16년에 죽자 아들 구이신왕(久爾辛王)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18대 왕으로 제17대 아신왕의 아들이며, 『삼국유사』권1 왕력에는 진지(眞?),영(映)이라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 전지왕조에는 직지(直支), 영(映)으로,『양서(梁書)』에는 여영(餘映)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신왕이 죽자 왜에 인질로 체류하고 있던 태자 전지가 8년 만에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전지왕의 즉위과정에 또 다시 왕위계승분쟁이 발생하였다. 아신왕의 맏아들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을 가진 태자 전지가 아신왕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길에 오르고 있을 때, 큰 아우인 훈해(訓解)가 일시 섭정을 하면서 태자 전지의 환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작은 아우인 설례(?禮)가 왕위계승의 원칙을 무시하고 형 훈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한성사람 해충과 그의 지지세력에 의해서 진압되고 전지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전지왕 4년(408)에 상좌평이 설치와 관련하여, 5세기 왕권의 대귀족 통제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에 설치되었고, 전지왕의 정치적 기반이 허약한 상황에서 실권을 장악한 유력한 귀족세력간에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조처라고 보아 상좌평을 귀족세력들의 이익과 의사를 대변하기 위한 장치로 파악하고 있다.(노중국, 1988; 양기석, 1990) 그러나 이와 달리 오히려 왕권중심의 정치체제의 확립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제도적 장치의 측면으로 보기도 한다.(노태돈, 1981; 주보돈, 1992)

참고문헌

노태돈, 1981, 「三國의 政治構造와 社會 ? 經濟」『한국사』2, 국사편찬위원회.
노중국, 1988, 『百濟史硏究』, 일조각.
양기석, 1990, 「百濟 專制王權 成立過程硏究」, 단국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주보돈, 1992, 「삼국시대의 貴族과 신분제」『韓國社會發展史論』.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八 ?<支>王 [一作<眞><支>王 名<映> 阿莘子 乙巳立 治十五年]
제18 전지왕 [진지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영이며, 아신의 아들이다. 을사년에 즉위하여 15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