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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구이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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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신왕

기본정보

백제 제19대 왕
생몰년:?-427
재위기간: 420-427

일반정보

백제의 제19대 왕으로 제18대 전지왕(?支王)의 아들이다. 전지왕의 뒤를 이어 420년부터 427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 8년에 죽자 아들 비유왕(毗有王)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19대 왕으로 제18대 전지왕의 아들이다.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에는 구이신왕의 재위기간이 420~427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송서(宋書)』백제전에는 여영餘映(전지왕)-餘毗(비유왕)으로 왕실 계보를 기록하고 있을 뿐, 구이신왕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전지왕이 경평(景平) 2년(424)에 송에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구이신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전지왕의 사망과 구이신왕의 즉위를 응신 25년(414)으로 기록하면서, 응신 39년(428)조에는 전지왕이 생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혼동을 보이고 있으나 구이신왕의 즉위 자체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전지왕의 사망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송서』의 기록을 존중하여 424년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면, 구이신왕의 재위는 424년 이후부터 427년까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노중국, 1988) 그러나 424년 조공이 아직 전지왕이 생존한 것으로 잘못 안 중국측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414년이나 420년 중의 어느 해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구이신왕은 그 이후에 즉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기동, 1982)

그러나 『일본서기』응신기의 백제 왕력에 대한 서술 자체에서도 2가지 형태의 다른 내용이 전해지는 만큼 편찬단계에 이미 이와 같은 2가지 형태의 사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구이신왕대의 기사가 『백제기』를 전거로 한 분주내용은 목만치를 중심으로 구성된만큼 그를 기년확정의 준거로 삼을 경우 414년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송서』의 기록이 중국측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지왕의 사망과 구이신왕의 즉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420년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문동석, 2007)

구이신왕은 『삼국사기』에는 즉위년 기사와 사망 기사만 있지만, 『일본서기』응신기에 25년조에 “백제의 직지왕이 떠나니 아들인 구이신이 왕위에 올랐다. 왕이 나이가 어렸으므로 목만치가 국정을 잡았는데 왕모와 서로 정을 통하고 무례한 행동이 많았다. 천황이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불렀다”고 하였다. 나이가 어린 구이신왕이 재위한 동안 목만치가 국정을 전횡하였다고 하는 것은 『삼국사기』의 공백부분을 메워주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노중국, 1988, 『百濟史硏究』, 일조각.
이기동, 1996, 『百濟史硏究』, 일조각.
문동석, 2007, 『백제지배세력연구』,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九 久爾辛王 [?<支>子 庚申立 治七年]
제19 구이신왕 [전지의 아들이다. 경신년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