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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비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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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왕

기본정보

백제 제20대 왕
생몰년: ?-455
재위기간: 427-455

일반정보

백제의 제20대 왕으로 제19대 구이신왕(久爾辛王)의 아들이다. 구이신왕의 뒤를 이어 427년부터 455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29년에 죽자 아들인 개로왕(蓋鹵王)이 왕위에 올랐다.

전문정보

백제의 제20대 왕으로 제19대 구이신왕의 아들이다. 그러나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에는 본문에 “구이신왕의 장자(久?辛王之長子是))”라고 하였고 『삼국유사』권1 왕력 역시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 비유왕 즉위년조의 할주(割註)에 “비유왕을 전지왕의 서자(庶子)라고 하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或云 ?支王庶子 未知孰)”고 하여, 비유왕을 전지왕의의 서자라는 이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비유왕의 연령관계를 비교하면, 구이신왕의 아들로서 비유왕이 즉위하였다면, 당시 극히 연소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구이신왕이 15세에 비유왕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즉위 당시 비유왕은 9세에 불과함으로 구이신왕이 20세에 비유왕을 낳았다면 비유왕은 4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령관계를 생각한다면 비유왕이 구이신왕의 아들이라기보다는 형제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중시된다고 한다.(이도학, 1995; 이기백, 1996) 즉, 비유왕은 전지왕의 아들(庶子)이고 구이신왕의 서제(庶弟)라는 것이다.

비유왕을 전지왕의 아들이라고 할 때 구이신왕대의 목만치의 전횡, 『삼국사기』에 구이신왕대에 즉위기사와 사망기사 밖에 없는 사실, 그리고 전지왕의 아들이요 구이신왕의 동생인 비유왕의 즉위라고 하는 일련의 사건은 비유왕의 즉위에 어떤 정치적 암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문동석, 2007)

한편, 비유왕은 고구려의 남진 압박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였고, 신라에서는 답례로 양질의 금과 명주를 보내왔다. 이리하여 양국 간에 이른바 나제(羅濟)동맹이 체결되었다.

비유왕의 사망에 대하여 『삼국사기』권25 백제본기3 비유왕29년조에 “검은 용이 한강에 나타났는데 잠깐 동안에 구름과 안개가 끼어 캄캄해지더니 날아가 버렸다. 왕이 죽었다(黑龍見漢江 須臾雲霧晦冥飛去 王薨)”고 하였다. 이를 통해, 흑룡이 날아가는 것과 왕의 사망을 연계시켜 보여줌으로써 곧 비유왕이 정변에 의해 희생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하는 것과(이도학, 1995), 또한 비유왕이 정변에 의해 희생된 것은 그의 아들인 개로왕이 즉위한 후 부왕인 비유왕의 능원이 “해골은 맨 땅에 임시로 매장되어 있고(先王之骸骨 權?於露地)”에서 보듯이 제대로 조영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노중국, 1988; 이도학, 1995)

참고문헌

노중국, 1988, 『百濟史硏究』, 일조각.
이도학, 1995, 『백제 고대국가 연구』, 일지사.
이기백, 1996, 『韓國古代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문동석, 2007, 『백제지배세력연구』, 혜안.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 毗有王 [久爾辛子 丁卯立 治二十八年]
제20 비유왕 [구이신의 아들이다. 정묘년에 즉위하여 28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