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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삼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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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근왕

기본정보

백제의 제23대 왕
생몰년 : 465-479
재위기간 : 477-479

일반정보

삼근왕(三斤王)은 백제의 제23대 왕이다.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의 장자로 해구(解仇)에 의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재위 2년에 해구의 반란을 겪었으며, 반란이 평정된 다음해(479)에 죽어 동성왕(東城王)이 즉위하였다.

전문정보

백제 제23대 삼근왕(三斤王)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의하면 삼걸왕(三乞王)이라고도 하는데,『삼국사기』권26 백제본기4 삼근왕 즉위년조의 세주에는 임걸(壬乞)로 되어 있다. 문주왕(文周王)의 장자로 477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병관좌평 해구(解仇)가 문주왕을 살해한 후 삼근왕이 왕위를 이었는데, 어린 왕 역시 해구를 비롯한 귀족들의 정권농단을 막을 수 없었다. 삼근왕은 즉위와 동시에 모든 군무와 정사를 해구에게 맡기었고, 해구는 왕이 즉위한지 채 1년도 안되어서 반란을 일으켰다.『삼국사기』권26 백제본기4 삼근왕 2년(478)조의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봄에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燕信) 과 함께 무리를 모아 대두성(大豆城)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좌평 진남(眞男)에게 명령하여 군사 2천 명으로 토벌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은 다시 덕솔(德率) 진로(眞老)에게 명령하여 정예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공격하여 죽였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그 처자를 잡아다가 웅진의 저자에서 목을 베었다(春 佐平解仇與恩率燕信聚衆 據大豆城叛 王命佐平眞男 以兵二千討之 不克 更命德率眞老 帥精兵五百 擊殺解仇 燕信奔高句麗 收其妻子 斬於熊津市).”

위 기사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해구가 반란을 일으킨 원인으로 정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귀족들의 반발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진씨(眞氏) 세력이 삼근왕을 옹립하고 해구 세력에 대항한 것으로 파악된다.(이도학, 1995) 해구가 삼근왕을 옹립한 후 임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왕이 그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되자, 진씨(眞氏) 세력을 포함하여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해구를 견제하려 했고 이러한 상황을 물리치기 위해 해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구의 의도와는 다르게 반란은 실패하여 주동자인 해구는 죽음을 당하였고, 반란을 평정한 진로(眞老)는 정권을 장악하였다.

삼근왕은 재위 3년(479)만에 죽게 되는데, 이것은 진씨세력이 해구의 반란을 평정한 이후 삼근왕을 반역신이 옹립한 왕이라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그들의 권력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다루기 쉬운 곤지(昆支)의 아들인 동성왕(東城王)을 옹립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노중국, 1988)

참고문헌

노중국, 1988,『百濟 政治史硏究』, 일조각.
이도학, 1995,『백제 고대국가 연구』, 일지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三 三斤王 [一作三乞王 文周子 丁巳立 理二年]
제23대 삼근왕[또는 삼걸왕이라고도 하며 문주왕의 아들이다. 정사년에 즉위하여 2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