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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모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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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본왕

기본정보

고구려 제5대 왕
생몰년: ?-53
재위기간: 48-58

일반정보

고구려 제5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48년∼53년이다. 『삼국유사』왕력편에는 성을 해씨, 이름을 “애류(愛留)” 또는 “우(憂)”라 하였고, 『삼국사기』권14 고구려본기2 모본왕 즉위년조에서는 이름을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라고 하여 차이가 있다. 성품이 사납고 정사를 잘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한을 사 결국 재위 6년 만에 신하인 모본인(慕本人) 두로(杜魯)에게 피살되어 모본원(慕本原)에 장사지냈다.

전문정보

고구려 제5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48년∼53년이다. 『삼국유사』왕력편에는 성을 해씨, 이름을 “애류(愛留)” 또는 “우(憂)”라 하였고,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모본왕조에는 이름을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라고 하여 차이가 있다. 『위서(魏書)』권100 고구려전의 ‘如栗死 子莫來代立’에서 ‘막래(莫來)’를 ‘모본(慕本)’의 잘못으로 보기도 하나, 이럴 경우 여율(如栗: 대무신왕) 다음에 재위한 민중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중국 측에서 이를 망각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이병도, 1996)

『삼국사기』권14 고구려본기2 모본왕조에 의하면 모본왕은 제3대 왕인 대무신왕의 아들로 태자에 책립되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대무신왕의 동생인 민중왕이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민중왕의 사후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는 모본왕이 민중왕의 형이라고 하였다.

재위2년(49)에 한(漢)나라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지를 공격하기도 하였으나, 한나라 요동태수 채동(菜?)의 노력으로 한나라와 다시 화친을 맺었다. 성품이 사납고 정사를 잘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한을 사 결국 재위 6년 만에 왕의 측근 시종으로 파악되기도 하는(조인성, 1980) 모본인(慕本人) 두로(杜魯)에게 피살되어 모본원(慕本原)에 장사지냈다.

모본왕은 즉위년 10월에 왕자 익(翊)을 태자로 책립했으나, 죽은 뒤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인 궁(宮)이 제6대 태조왕으로 즉위했다. 그런데 궁의 성은 고씨(高氏)이므로 모본왕을 마지막으로 하여 연노부(涓奴部) 출신의 유리왕계의 해씨왕시대(解氏王時代)는 끝이 나고 계루부 고씨(桂婁部高氏)의 왕위계승권이 확립되었다고도 보기도 한다.(김용선, 1980)

참고문헌

김용선, 1980, 「高句麗琉璃王考」『歷史學報』87.
조인성, 1980, 「慕本人杜魯-고구려의 순장과 守墓制에 관한 일검토」『歷史學報』87.
이병도, 1996, 『譯註三國史記』,을유출판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 慕本王 [閔中之兄 名愛留 <一作憂> 戊申立 理五年]
제5 모본왕 [민중의 형으로 이름은 애류이다. 또는 우라고도 한다. 무신에 즉위하여 오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