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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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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

기본정보

고구려 제8대 왕
생몰년: 89-179
재위기간: 165-179

일반정보

고구려의 제8대 왕으로 165년부터 179년까지 재위하였다. 이름은 백고(伯固) 또는 백구(伯句)이다. 『삼국사기』권16 고구려본기 4 신대왕 즉위년조에는 태조왕의 동생이라고 하였으나 『후한서』권85 동이열전 고구려전에는 차대왕의 아들, 『삼국지』권30 오환선비동이전 고구려조에는 태조왕의 아들이라고 하여 차이가 있다. 차대왕이 살해된 후 왕위에 올랐다. 고구려의 최고위직이었던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를 단일화해 국상(國相)을 설치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지배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였고 부자상속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대외관계에 있어서 당시 요동·요서 지역에서 신흥 세력으로 등장한 공손탁(公孫度)을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쳤고 한나라 군대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91세로 죽자 고국곡(故國谷)에 장사지냈다.

전문정보

고구려의 제8대 왕으로 165년부터 179년까지 재위하였다. 이름은 백고(伯固) 또는 백구(伯句)로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사기』권16 고구려본기 제4 신대왕 즉위년조에는 “태조대왕의 막내동생이다(大祖大王之季弟)”라고 하였으나 『후한서』권85 동이열전 고구려조에는 “수성이 죽자 아들인 백고가 즉위하였다(遂成死 子伯固立)”이라고 하여 차이가 있다. 또 『삼국지』권30 오환선비동이전 고구려조에는 “궁이 죽자 아들인 백고가 즉위하였다(宮死 子伯固立)”이라고 하여 차대왕(遂成) 1대를 빠뜨리고 태조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였다. 아들로는 고국천왕이 된 남무(男武)와 발기(發岐), 산상왕이 된 연우(延優) 와 계수(?須)가 있다.

즉위과정에 있어서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신대왕이 태조왕과 차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삼국사기』권17 고구려본기5 신대왕 즉위년조에는 차대왕이 명림답부(明臨答夫)에 의해 살해당한 뒤 좌보(左輔) 어지류(支留) 등 여러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신대왕은 즉위한 이듬 해인 166년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리고, 차대왕의 태자 추안(鄒安)을 양국군(讓國君)에 봉하면서 토지를 하사하는 등 반대 세력을 무마하는 데 힘썼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까지 고구려의 최고위직이었던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를 단일화해 국상(國相)이라는 관직을 설치하고, 명림답부를 이에 임명함으로써 귀족 세력들의 조정·통제를 도모하는 등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지배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재위 12년(176) 왕자 남무(男武)를 태자로 책봉함으로써 부자 상속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노중국, 1979)

재위 5년(169)에는 대가(大加) 우거(優居)와 주부(主簿) 연인(然人)을 파견해, 당시 요동·요서 지역에서 신흥 세력으로 등장한 공손탁(公孫度)을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손탁이 독립 세력으로서 등장한 것은 190년 이후이므로, 이것은 후대의 사실이 신대왕 때의 사건으로 잘못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이병도, 1996)

재위 8년(172)에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왔으나, 명림답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성을 견고하게 지키는 작전으로 나아가 그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회군하는 적을 추격해 대파하였다. 91세로 죽자 고국곡(故國谷)에 장사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노중국, 1979, 「高句麗國相考」『韓國學報』16·17合.
이병도. 1996, 『譯註三國史記』, 을유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八 新大王 [名伯固 一作伯句 乙巳立 理十四年]
제8 신대왕 [이름은 백고인데 백구라고도 한다. 을사년에 즉위하여 14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