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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키워드사전소수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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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림왕

기본정보

고구려 제17대 왕.
생몰년 : ?-384
재위기간 : 371-384

일반정보

이름은 구부(丘夫)이며 아버지는 고구려 제16대 국원왕이다. 전진(前秦)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太學)을 두는 등 국내외적으로 안정된 체제를 정비하였다.

전문정보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소수림왕의 이름을 구부(丘夫)라 하였고 아버지는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이다.『삼국사기』권18 고구려본기6 소수림왕 즉위년조에서는 고국원왕 25년(355)에 태자가 되었으며 41년(371)에 고국원왕이 죽자 즉위했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소수림왕대에 이르러 처음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삼국사기』권17 고구려본기6 소수림왕 2년조(372)에서는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고 하였으며, 같은 왕 4년(374)에는 중 아도(阿道)가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소수림왕 5년(375) 봄 2월에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세워 순도와 아도를 두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불교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전래와 관련하여 고구려 불교의 성격을 정권과 밀착된 불도징(佛圖澄)계의 북조불교(北朝佛敎)라고 보기도 한다. 불도징은 서역의 고승으로 후조(後趙)왕실로부터 국사(國師)대우를 받았으며 이후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후조불교의 특성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전진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 바 없었으며, 전진의 부견이 고구려에 전한 불교도 이러한 성격을 띤 것으로 주장하였다.(이용범, 1973)

그리고 불교가 전진보다는 전연(前燕)을 통해 고구려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전연 옆에 있던 후조는 숭불정책을 표방하였는데, 전연이 후조의 영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접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즉 전연의 불교는 전연이 후조의 영역이던 북중국으로 진출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조의 불교와 서역승, 그리고 고승 도안(道安) 등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이후 전연이 342년 고구려를 침공한 이후 전연과 고구려는 빈번한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즉 미천왕의 시신과 왕모 주씨(周氏)의 반환 교섭 등으로 양국간의 왕래가 활발했으며, 13년 동안 전연에 포로로 있던 주씨가 그 동안 불교를 믿게 되어서 고구려에 돌아올 때 포교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또 전연으로 잡혀갔던 남녀 포로 5만여 인을 비롯하여 전연으로 갔던 고구려인 및 전연이 고구려와 통교하면서 고구려에 갔던 전연인들도 불교가 고구려에 전파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에서 승려 순도가 와서 불상과 경문을 전하자, 고구려에서도 사신을 보내어 회사(回謝)하면서 방물을 전하였다는 사실도 고구려 왕실이 이미 불교를 접한 것에 대한 방증이 된다고 하였다.(지배선, 1987)

불교가 고구려에 전래된 것에 대해서 불교의 초전(初傳)과 공전(公傳)을 구별하는 관점도 있다. 즉 중국의 고승 지둔(支遁)과 서신 왕래를 한 고구려 도인(道人)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초전(初傳)되었으나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기록대로 소수림왕 2년(372) 전진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다음,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지어 순도와 아도를 머물게 한 것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불교를 수용한 공전(公傳)으로 파악하였다.(김영태, 1990) 그리고 불교를 받아들이는 주체인 고구려의 입장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온 것은 불교의 전래,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지어 순도와 아도를 머물게 한 것은 불교의 수용, 그리고 고국양왕 9년(392)에 왕이 불법을 믿고 복을 구하라고 명을 내린 것을 불교의 공인으로 보기도 한다. 사찰은 외부로부터 전래된 불교를 받아들이는 쪽의 주체적 노력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승려를 그 사찰에 머무르게 한 것은 전래된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찰을 창건하고 승려를 머무르게 한 것이 곧 불교의 공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고국양왕이 불법을 믿고 복을 구하라고 한 것이 비로소 불교에 대한 법제적 조치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불교를 받아들이는 쪽의 의지가 불교 공인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최광식, 2007)

소수림왕은 재위 13년(384)만에 죽었으며, 아들이 없어 동생 이속(伊速)이 뒤를 이어 고구려 제18대 국양왕(國壤王)이 되었다.『삼국사기』권18 고구려본기6 소수림왕 14년조(384)에는 겨울 11월에 왕이 죽어 소수림(小獸林)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이용범, 1973,「北朝前期佛敎의 高句麗傳來」『동국대학교 논문집』12.
지배선, 1987,「高句麗 佛敎傳來의 一考」『한성대학 논문집』11.
김영태, 1990,『삼국시대 불교신앙 연구』, 불광출판부.
최광식, 2007,『한국고대의 토착신앙과 불교』, 고려대학교 출판부.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七 小獸林王 [名丘夫 辛未立 理十三年]
제17 소수림왕 [이름은 구부이다. 신미년에 즉위하여 13년간 다스렸다.]

관련원문 및 해석

第十七 小獸林王 [名丘夫 辛未立 理十三年]
제17 소수림왕 [이름은 구부이다. 신미년에 즉위하여 13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