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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

기본정보

신라 신무왕대의 장군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신무왕대 장군으로 신무왕의 즉위를 도왔으며, 청해진에 들어가 장보고를 암살하였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2 기이2 신무대왕 염장 궁파조에서 군신들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들이는 것에 반대하여 장보고가 반란을 꾀하자 염장은 장보고를 제거하려고 거짓으로 왕에게 원망이 있는 척하여, 청해진에 들어가 장보고를 죽였다고 한다. 이것은 『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문성왕 8년(846)조의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속일본후기』 권11 승화 9년(842) 정월 1일조에는 “우두머리 소정이 말하기를, ‘장보고가 죽고 그의 부장 이창진(李昌珍)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함에 무진주 별가 염장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여 평정하였으므로 지금은 이미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다만 적의 무리들이 망을 빠져나갔다가 문득 당신들 나라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 공경이 의논하기를, 소정은 일찍이 장보고의 신하였는데, 지금은 염장의 사신이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염장은 직접적으로 장보고를 죽이지 않았으나 후에 그 휘하 군사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를 진압했다고 전하는 것이다.

염장에 대한 기록은 이보다 앞서 『삼국사기』 권10 신라본기10 민애왕 즉위년(838)조에 “겨울 12월에 김양이 평동장군(平東將軍)이 되어 염장(閻長), 장변(張弁), 정년(鄭年), 낙금(駱金), 장건영(張建榮), 이순행(李順行)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무주(武州) 철야현(鐵冶縣)에 도착하였다.”고 하여 신무왕이 즉위하는데 공을 세웠다. 당시 기록상 염장이 김양 휘하에서 군사를 이끈 것을 보아 그는 김양의 부하인 것으로 보인다.(蒲生京子, 1979)

이후 『삼국유사』신무대왕 염장 궁파조와 『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문성왕 8년(846)조의 내용을 보아 염장이 장보고를 죽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 대개 장보고를 암살한 그를 암살자로 파악한다.(今西龍, 1933)

그러나 염장의 장보고를 암살하게 된 배후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다. 염장의 배후에는 장보고가 골품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조정 대신들을 비롯한 보수적인 지방의 호족들이 있었다는 견해(김광수, 1985)와 청해진의 사무역 독점으로 인해 이익을 상실하게 된 군소 해상 세력가와 중앙 귀족들이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이기동, 1985) 혹은 장보고를 견제한 김양이 염장을 보내어 그를 암살하고 그 휘하 군사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진압했다고 보기도 한다.(서윤희, 2001)

참고문헌

今西龍, 1933, 『新羅史硏究』, 近澤書店.
蒲生京子, 1979, 「新羅末期の張保皐の擡頭と反亂」『朝鮮史硏究會論文集』16.
김광수, 1985, 「장보고의 정치사적 위치」『張保皐의 新硏究』, 완도문화원.
이기동, 1985, 「張保皐와 그의 海上勢力」『張保皐의 新硏究』, 완도문화원.
서윤희, 2001, 「淸海鎭大使 張保皐에 관한 연구 -新羅 王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震檀學報』92.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신무대왕 염장 궁파)
神武大王 閻長 弓巴
第四十五神武大王 潛邸時□俠士弓巴曰 我有不同天之? 汝能爲我除之 獲居大位 則娶爾女爲妃 弓巴許之 協心同力 擧兵犯京師 能成其事 旣簒位 欲以巴之女爲妃 群臣極諫曰 巴側微 上以其女爲妃則不可 王從之 時巴在淸海鎭爲軍戍 怨王之違言 欲謀亂 時將軍閻長聞之 奏曰 巴將爲不忠 小臣請除之 王喜許之 閻長承旨歸淸海鎭 見謁者通曰 僕有小怨於國君 欲投明公 以全身命 巴聞之大怒曰 爾輩諫於王而廢我女 胡顧見我乎 長復通曰 是百官之所諫 我不預謀 明公無嫌也 巴聞之 引入廳事 謂曰 卿以何事來此 長曰 有?於王 欲投幕下 以免害爾 巴曰 幸矣 置酒歡甚 長取巴之長劍斬之 麾下軍士驚?皆伏地 長引至京師復命曰 已斬弓巴矣 上喜賞之 賜爵阿干
신무대왕(神武大王) 염장(閻長) 궁파(弓巴)
제45대 신무대왕(神武大王)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협사(俠士)인 궁파(弓巴)에게 말하기를, “내겐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가 있다. 네가 나를 위해 그를 제거해준다면, 왕위를 차지한 후에 너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겠다.”고 하였다. 궁파는 이를 허락하고,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군대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가 그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왕이) 이미 왕위를 빼앗고 궁파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고 했으나, 여러 신하들이 극력으로 간하기를, “궁파는 미천한 신분이니 임금께서 그 딸을 왕비로 삼는 것은 불가합니다.”고 하여 왕이 그 말을 따랐다. 그때 궁파는 청해진에서 군진을 지키고 있었는데, 왕이 약속을 어긴 것을 원망하여 반란을 꾀하려고 하였다. 이때 장군 염장이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아뢰기를, “궁파가 장차 충성스럽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하니, 소신이 그를 제거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기뻐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염장은 뜻을 받들고 청해진(淸海鎭)으로 가서 연락하는 사람을 통해 말하기를, “나는 우리 왕에게 작은 원망이 있소. 명철한 공에게 의탁하여 신명을 보전하려고 합니다.”고 하였다. 궁파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성내 말하기를, “너희들이 왕에게 간하여 나의 딸을 폐하게 하고 어찌 나를 보려고 하느냐?”고 하였다. 염장이 다시 통해 말하기를, “그것은 많은 관료가 간한 것이고, 나는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명철하신 공께서는 (나에게) 혐의를 가지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궁파가 이 말을 듣고 청사(廳事)에 불러들여 (염장에게) 이르기를, “경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라고 하니, 염장이 말하기를, “왕에게 거스른 일이 있어, (공의) 막하에 들어가 해를 면하려고 할 뿐입니다.”고 하였다. (이때) 염장이 궁파의 장검을 취해 그를 베니, 휘하의 군사들이 놀라고 무서워서 모두 땅에 엎드렸다. 염장이 (군사를) 이끌고 서울로 와 복명하여 말하기를, “이미 궁파를 베었습니다.”고 하니, 왕은 기뻐하면서 그에게 상을 주고 아간의 벼슬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