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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조선의 왕위계승

조선시대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적장자(嫡長子) 계승의 원칙으로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둘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이다.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군주제도에서 큰 장점이었다. 왕자들간의 다툼을 방지하고, 후계자를 미리 교육시켜 장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무력하거나, 적장자보다 둘째나 셋째 아들이 유능한 경우 정국은 늘 쿠데타의 가능성으로 불안했다. 또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들만 여러 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로 정치 불안이 가중되었다.
조선에서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는 27명의 왕 중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7명 뿐이다. 이 외에 적장자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즉위하지 못한 경우도 7명이나 있었다. 세조의 큰아들 덕종, 명종의 순회세자, 인조의 소현세자, 순조의 큰아들 문조는 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양녕대군과 연산군. 광해군의 세자는 폐세자되었다. 적장자 계승원칙은 조선 왕위계승에서 매우 취약하였다.
반면 적장자가 아니면서 왕이 된 경우는 태조를 제외하고 19명이나 되었다. 이는 덕이 있다는 명분이거나 후궁의 아들인 경우이다. 조선의 개국 시조는 물론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 세종의 즉위와 임진왜란 후의 광해군의 경우가 있다. 세조, 효종, 영조도 정치적 격변을 겪고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외에 후궁의 아들로 왕위에 오를 경우 대부분 격렬한 궁중 암투를 겪었다. 특히 대비가 후계자로 지명한 선조나 철종은 아무 준비없이 갑자기 왕이 되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탄생과 어린시절

왕이 아들을 보는 것은 종사가 걸린 일이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왕과 왕비는 길일을 택해 합방하고, 아들이 들어서는데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고, 그 결과 임신하면 왕비는 본격적으로 태교에 들어간다. 왕비의 만삭이 다가오면 예정일 서너 달 전에 산실청이 설치된다. 원자가 탄생함과 동시에 왕은 소격전(昭格殿)에 명하여 사흘간 아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왕도 몸소 소격전을 찾아와 절을 하며 첫아들의 만복을 기원한다.
한편 탯줄은 어머니와 조상을 이어주는 생명의 통로로 여겨져 소중히 보관된다. 원자가 탄생하고 사흘이나 7일째가 되면 태를 물로 씻는 의식, 즉 세태(洗胎)를 행한다. 물로 씻은 태는 다시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명당을 골라 안장하는데, 이를 태봉(胎峰)이라 했다. 태와 함께 산실에 깔았던 고운 짚으로 만든 산자리도 소중하게 보관된다. 출산 당일 권초관은 산자리를 붉은 줄로 묶어서 산실문 밖의 위에 걸어 놓아 민간의 금줄을 대신한다. 7일째에 권초관이 산자리를 붉은 보자기에 쌓아 함에 넣어 주면 내자시의 관리가 받아다가 권초각에 보관한다.
원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양청(保養廳)이 설치되어 공식적으로 그의 보호와 양육을 담당하게 된다. 보양관이 책임자이며 종2품 이상의 고위관료 3명이 임명된다. 원자가 먹을 음식과 입을 옷 또는 서책의 공급과 관리는 보양청에서 관장했다. 실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수청서리(보양청 숙직담당 서리) 4명, 서사(글씨담당자) 1명, 사령(심부름꾼) 4명이 배속되었다. 공식적으로 원자의 보호와 양육을 담당한 것은 보양청이었지만, 사실상의 양육은 왕비와 유모 및 궁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원자가 영아기를 지나 글을 배울 때쯤인 네 살 정도가 되면 보양청은 강학청(講學廳)으로 바뀐다. 강학청이 설치되면, 교육을 담당할 보양관들이 임명된다. 보통은 2품 이상인 보양관들이 그대로 사부로 임명되지만, 학덕이 뛰어난 사람이 추가되기도 한다. 원자 강학청의 교육은 <소학(小學)> <천자문(千字文)>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을 이용한 유교교육이 중심이 되었다, 수업은 매일 아침, 낮, 저녁 때 각각 세 번을 했으며, 수업시간은 대략 45분 가량이었다. 원자에게는 보통 하루에 교재의 본문 한글자를 교육했다. 사부가 한문의 글자 음과 뜻을 새겨주면 원자는 그대로 따라서 반복하는데, 이전에 배운 것과 당일 배운 것을 모두 외우는 것이 보통이다.

세자시기
1. 세자책봉례

조선시대의 세자책봉은 후계구도의 확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자 책봉례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이다. 조정의 백관들을 모아놓고 책봉례를 거행한 후 바로 종묘에 이 사실을 고하고 팔도에 알린다.
세자 책봉례 장소는 대궐정전 앞이다.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따라 늘어 선 앞에서 왕은 세자에게 죽책문(竹冊文).교명문(敎命文). 세자인(世子印)을 전해준다. 죽책문은 임명장이고, 교명문은 세자에게 당부하는 훈계문이며, 세자인은 세자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임명권자는 주상이다. 그러나 사후에 형식적으로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세자는 책봉된 직후에 성균관 입학례를 행한다. 성균관에 가서 공자에게 절하고 교수관인 박사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고, 실제 입학하는 것은 아니다.

2.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호위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가 담당하였다. 세자의 교육을 위해 당연직으로 영의정이 세자의 사(師)로, 좌의정과 우의정 중에서 한 명이 부(傅)로, 종 1품의 찬성 한 명이 이사(二師)로 임명된다. 그러나 세자를 실제 담당 교육하는 사람들은 보덕(輔德) 이하의 전임관료들이다. 세자시강원의 전임관료는 정3품의 보덕1명, 정4품의 필선(弼善) 1명, 정5품의 문학(文學)1명, 정6품의 사서(司書)1명, 정 7품의 설서(設書) 1명 등 5명이다. 이들은 모두 문과에 합격한 가문 좋고 실력이 뛰어난 참상관들이다.
세자교육에는 <소학> <효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대학연의(大學衍義)> <상서(尙書)> <주역> <예기> <춘추좌전(春秋左傳)>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이 교재로 이용된다.

3. 세자의 일과

왕의 후계자로 예정된 세자의 역할은 단순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인사하는 것이 전부이다. 만약 이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의 주제를 넘어서면 절대권력자인 왕과 부딪치게 되고 폐세자의 위기에 직면했다.
세자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하고 왕과 왕비 또는 대비에게 문안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안인사를 다녀오면 아침식사를 하고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이 지도로 바로 조강(朝講,아침공부)을 시작한다. 아침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하고 주강(晝講,낮공부)과 인 석강(夕講,저녁공부)을 이어서 하였다. 석강이 끝나면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웃어른에게 인사하였다. 이것이 공식적인 세자의 일과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화 없이 계속 반복된다. 하루 종일 공부에 전념하고, 그밖에 말타기, 활쏘기, 붓글씨 등 육예(六藝)를 연마하였다.

4. 세자의 관례와 혼례

<주자가례>에 의하면 관례는 15~20세 사이에 관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으나 세자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원자책봉 후에 곧바로 관례를 행했다. 이는 원자로 책봉된다는 사실 자체가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른 시기에 세자나 세손으로 책봉되어도 마찬가지다.
관례는 유교식 성인의식인데, 어른의 표시로 관(冠)과 성인복장을 착용하게 하고 보통 이름과 평생 명심해야 할 훈계의 내용을 고려하여 자(字)를 지어준다. 원자 또는 세자가 관례를 치를 때는 관례의 주인(主人)은 나이 많은 종친 중에서 선발한다. 관례에 참석하는 빈(賓). 찬(贊)은 대체로 원자강학관 또는 세자시강원의 관료 중에서 차출되었다. 관례를 행하는 장소는 대궐 밖의 나이 많은 종친 주인집이다. 관례가 끝나면 이어서 왕에게 인사하고 종묘에 고했다.
조선시대 왕의 혼례는 대체로 10세 안팎인 세자 시기에 치렀다. 혼례를 치른 세자는 정부인인 세자빈 이외에 공식적으로 소실을 둘 수 있었다. 세자의 소실에는 종2품의 양제, 종3품의 양원, 종4품의 승휘, 종5품의 소훈 등 네 종류가 있었다.

세자의 대리청정

세자는 예비왕일 뿐이다. 따라서 세자로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주제를 지켜야 한다. 세자가 정치에 간여하거나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바로 삼사관료들의 탄핵이 뒤따르게 된다.또한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자는 아들이 아니라 정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세자가 정치에 간여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없다. 그러나 세자가 대리청정하는 상황이 있다. 첫째는 왕권에 위협을 느낀 왕이 마지못해 대리청정을 명하는 경우이다. 계속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발발하면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자가 대리청정하거나 왕이 전위하겠다는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 때의 광해군, 영조 때의 사도세자, 순조 때의 효명세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하였다. 이때 세자의 입장은 몹시 위험하다. 모든 영광은 왕에게 돌아가지만 반대로 조금의 허물이나 실정이 있으면 세자의 책임이 된다. 이와 달리 노년의 왕을 대신하거나 병중의 왕을 돕기 위해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세자의 입장에서는 미리 정치를 경험하는 셈이 되고, 왕도 왕권에 부담이 되지 않는 한 허물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세종의 경우 말년에 격무를 덜기 위해 세자(후의 문종)에게 약 5년간 대리청정을 시켰다.
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중에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지만 전권을 휘두를 상황은 아니다. 우선 세자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중요사항을 일일이 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또한 신료들도 왕과 세자 사이에서 처신을 조심하여야 한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대리청정이 취소되고 세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참고문헌

신명호, <조선의 왕>,가람기획,1998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돌베개,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