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뽕따기와 누에치기

뽕따기와 누에치기

조선시대 왕비는 국모로서 여성이 갖추어야 할 덕을 상징하였는데, 왕비가 행하는 친잠례(親蠶禮)는 특히 여성노동을 상징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잠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전국에 잠실을 두었는데, 한양에도 동잠실과 서잠실을 두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다. 궁궐 안의 넓은 후원에도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후원에 설치한 잠실을 내잠실(內蠶室)이라고 하였는데, 왕비는 주로 이곳에서 친잠례를 하였다. 한편 친잠례를 하기 전에 누에의 신인 선잠(先蠶)에게 제사를 올렸다. 선잠을 모신 곳이 선잠단인데, 조선 초기에 동소문(혜화문) 밖에 있다가 후에 선농단 있는 곳으로 옮겼다. 선잠단 제사는, 다른 사람을 선잠단에 보내 대신 행하거나 왕비가 친잠하는 장소에 별도로 선잠단을 쌓고 직접 제사지냈다.
조선시대 친잠례에 관한 것은 영조대에 편찬된 <친잠의궤>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왕비가 뽕을 딸 장소에는 채상단(採桑壇)이라는 단을 쌓았다. 채상단을 쌓은 후 잔디를 심고 주변에 휘장을 쳐서 다른 곳과 구별하였으며,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머무를 천막을 쳤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뽕을 따고 누에를 치기 위해서는 광주리, 갈고리, 시렁, 잠박(蠶箔), 누에 등이 필요했다. 왕비 등이 딴 뽕을 담기 위한 도구인 광주리는 대나무를 쪼개어 엮어 만들었다. 지팡이 모양의 갈고리는 기다란 뽕나무를 당기기 위한 도구이다. 시렁은 잠판을 놓기 위한 구조물이고, 잠박은 누에를 키우는 깔자리인데 대나무로 만들었다. 시렁 위에 잠판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잠박을 놓은 후 누에를 놓아 길렀다. 그리고 때에 맞춰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주었다.
친잠례 때 왕비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왕세자빈을 비롯하여 내외명부의 여성들이었다. 내명부는 1품 이상, 외명부는 당상관 이상의 부인들이 선발되었다. 수행 여성들은 아청색 옷을 입었다.
왕비가 내전을 떠나 친잠례를 행하러 출궁할 때에는 왕과 마찬가지로 왕비의 도장과 의장물과 악대가 딸렸다. 친잠할 장소에 도착한 왕비는 우선 선잠단에 제사를 올린 후 채상단 옆의 천막으로 이동하여 일상복인 황색 국의로 갈아입었다.
왕비는 채상단의 남쪽 계단을 이용해 단으로 올라가 다섯 가지의 뽕나무 잎을 딴 후 광주리에 넣었다. 이후에는 수행 여성들이 채상단 주의에서 뽕잎을 따기 시작하는데 1품 이상은 일곱 가지, 그 이하는 아홉 가지를 땄다. 왕비는 이 모습을 채상단의 남쪽에서 관람하였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딴 뽕잎을 누에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는데, 이 때는 왕비 대신 왕세자빈이 수행 여성들을 거느리고 갔다. 누에를 지키고 있던 잠모(蠶母)는 이 뽕잎을 잘게 썰어서 누에에게 뿌려 주었다. 누에가 뽕잎을 다 먹으면 왕세자빈이 다시 수행여성들을 거느리고 왕비에게 돌아왔다. 직접적인 친잠 행사는 여기까지이고, 이후에는 왕세자빈 이하 모든 여성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를 위해 왕비와 수행 여성들은 다시 평상복을 예복으로 갈아 입었다. 예복을 차려 입은 왕비가 채상단에 오르면 수행 여성들은 왕비에게 네 번 절을 올렸고, 연회가 끝나면 왕비는 다시 의장물을 갖추어 내전으로 환궁하였다. 궁중에서는 왕이 왕비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대소 신료들은 친잠을 위해 고생한 왕비에게 글을 올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였다.

참고문헌

신명호, <조선의 왕>,가람기획,1998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돌베개,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