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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궁궐건물의 원리

궁궐에는 공식행사를 거행하는 정전이나 임금의 평상시 집무 장소인 편전,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 등 여러 가지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이 지어지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 예제(禮制)이다. 오례의(五禮儀) 가운데 특히 궁궐건축에 영향을 미친 것은 가례(嘉禮)인데 왕과 신하간의 하례와 같은 왕이 참석하는 공식행사나 왕실내의 혼례 또는 회갑연 등이 해당된다. 궁궐건축은 가례를 행하는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궁궐건축을 짓는데 있어서는 가례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가 중요한 법칙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1. 정문

정문은 왕의 공식적인 출입이나 외국 사신의 출입과 군사의 출정 등 공식적인 행사 시에 사용하며, 관리들의 일상 출입은 따로 마련한 측면의 출입문을 이용한다. 정면 3간을 원칙으로 하며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고, 정문의 좌우에는 각루를 두어 주변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경북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경희궁 흥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이 궁궐의 정문이다.

2. 정전(正殿)

정전은 주로 국가적인 공식행사를 거행하는 장소로 쓰였는데 정월 초하루 또는 동짓날 문무백관이 임금께 절을 할 때나 국법을 반포하거나 임금이 중국 사신을 만날 때 또는 그밖에 임금이 공식적으로 아랫사람을 만날 때 사용되었다. 이럴 때는 문무백관이 건물 앞마당에 양쪽으로 도열하기 마련이고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는 절차가 있게 된다. 또 왕실의 많은 사람들이 왕 주변에 배열되고 행사장에는 군인들이 호위한다. 따라서 정전 건물은 중층 지붕이고, 넓은 마당이 있으며, 2중 기단으로 상월대와 하월대를 갖추어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자리를 마련한다. 또 건물 주변에는 왕을 상징하는 갖가지 장식물들이 꾸며지는데 월대로 오르는 계단이나 건물 천정에는 봉황이 새겨진 그림이 그려지고 왕이 앉는 뒷면에는 해와 달 등이 그려진 병풍이 쳐진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경희궁 숭정전, 덕수궁 중화전이 그 예이다.

3. 편전(便殿)

임금이 정기적으로 일부 중요한 신하들을 접견하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이다. 경복궁에서는 사정전, 창덕궁에서는 선정전이 편전이다. 편전에도 천장에 봉황을 그려 넣고 일월오악도의 병풍을 쳤다. 편전은 정전의 뒷편 또는 측면에 위치하며, 정면 3간의 단층으로 본래 실내에 어좌를 놓고 의자식으로 되었으며 바닥은 전돌을 덮었다. 조선중기 이후로 왕의 공식적인 집무는 원래의 편전 대신에 침전 앞의 다른 건물에서 주로 행해졌으므로, 이 건물이 편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17세기 이후의 창덕궁 희정당이 좋은 예이다. 이유는 창덕궁의 경우 선정전보다 희정당이 침전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본래 편전건물의 바닥이 돌로 되어서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하였고 희정당은 마루와 온돌 바닥의 좌식 생활이어서 더 편리하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4. 침전(寢殿)

왕이 평상시 거처하는 침전이 있는 구역은 흔히 내전이라고 부른다. 내전의 중심은 왕비가 거처하는 정전이고 그밖에 왕의 어머니인 왕대비전 등이 있다. 내전의 정전이나 대비전에는 가운데 3칸을 마루로 하여 공식 행사 때 왕비가 앉는 자리로 쓰고 앞에는 간단한 월대를 마련한다. 대청마루의 좌우에는 온돌방을 들이고, 방의 건물 사방에는 나인들이 대기하는 퇴칸을 마련하였다.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창문이 설치되고 난간에는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또 대청마루 천장에는 봉황을 그린 우물천장을 둔다. 내전 정전이나 대비전은 보통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이다. 창덕궁의 대조전, 경복궁의 교태전이 왕비전이며 창경궁의 통명전은 대개 대비전으로 사용되었고 경복궁의 자경전이 대비전이다. 여기는 여성들이 거처하는 곳이므로 아름다운 화계를 꾸미거나 조각을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밖에 후궁 처소는 주로 창경궁의 여러 소규모 전각에 위치하고, 헌종 때 낙선재(석복헌)를 건립하였다.

경복궁의 배치
1. 경복궁 배치의 기준

유교적 군주관에 적합한 궁궐에 대해서 경복궁 설계를 담당했던 정도전은 기본적으로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원리를 따랐다. ‘전조후시(前朝後市)’는 궁궐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전치를 행하는 관청을 놓고 뒤쪽에는 시가지를 형성한다. ‘좌묘우사(左廟右社)’는 궁궐 왼쪽에는 종묘를 놓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배치하는 것이다. ‘전조후침(前朝後寢)’은 궁궐 앞쪽에 정치를 하는 조정을 두고 뒤쪽에는 왕실의 거처인 침전을 배치하는 것이다. ‘3문3조(三門三朝)’는 궁궐 전체를 3개의 독립된 구역으로 분할하여 각 구역을 울타리로 둘러막고 각 구역 사이에는 문을 두어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규정은 주나라 이후 중국의 도성 및 궁궐의 계획에도 기본적 구성원리로 사용되었고, 조선왕궁 궁제의 기본이 되었다.
경복궁성은 도성의 한복판에 있지 않고 북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궁성 남쪽의 큰 길 좌우에는 의정부, 6조, 한성부, 사헌부, 삼군부 등 주요 관청을 배치하였고, 그 남쪽 동서로 뚫린 큰 길(지금의 종로)에 시장을 열어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종묘와 사직을 경복궁성의 왼쪽과 오른쪽에 놓았으나 똑 같은 간격으로 대칭이 되지는 않았다. 또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외성을 평지에 장방형으로 쌓지 않고 한성 분지를 밖에서 호위하는 백악산, 응봉, 인왕산, 타락산, 남산의 산등성이에 산성 형식으로 지형에 맞게 쌓았다. 결과적으로 주제를 의식하였으되 한성의 지형과 풍수적 명당터를 더 존중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경복궁의 건물구성

경복궁은 태조 4년(1395)에 창건되었다. 연침(燕寢,강녕전), 동소침(東小寢,연생전), 서소침(西小寢,경성전), 보평청(報平廳,사정전) 등 내전 건물과 정전(근정전), 동서 각루(융문루, 융무루), 주방, 등촉인자방(燈燭引者房), 상의원(尙衣院), 양전사옹방(兩殿司饔房), 상서사(尙書司), 승지방(承旨房), 내시다방(內侍茶房), 경흥부(敬興府), 중추원(中樞院), 삼군부(三軍府), 동서 누고(東西樓庫) 등 390 여칸이 준공되었다.
‘3문 3조’의 기준에서 3조는 연조, 치조(또는 내조), 외조를 말하는데, 연조는 왕과 왕비 및 왕실 일족이 생활하는 사사로운 구역으로 경복궁의 연침, 동소침, 서소침 등 3채의 침전이 이에 속한다. 치조는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정치를 행하는 공공구역으로서 종전과 편전으로 이루어지고 보평청과 정전이 여기에 속한다. 외조는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구역으로 주방 이하 동서 누고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3문은 고문(庫門, 외조의 정문), 치문(雉門, 치조의 정문), 노문(路門, 연조의 정문)인데 경복궁의 경우 오문(午門,남문)이 고문, 전문(殿門,근정문)이 치문이 된다. 단 보평청 뒤와 연침 사이 향랑에 기록에는 없지만 노문에 해당하는 문이 있었을 것이다. 이 3문 3조로 이루어진 궁실 전체를 다시 궁성으로 둘러싸고 거기에 동문(건춘문), 서문(영춘문), 남문(광화문, 2층 누문)을 설치한 다음 남문 앞쪽 대로 좌우에는 의정부, 삼군부, 6조, 사헌부 등 관청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태종 때에는 경회루를 짓고 주변에 못을 파서 군신의 연회 장소를 마련하였고, 세종 때에는 동궁, 후궁, 혼전(魂殿), 학문연구기관 및 후원까지 완비하여 이른 바 ‘법궁체제’를 완성하였다. 또 주요 전각뿐 아니라 문에도 고유한 이름을 붙였다. 사장전 좌우에 만춘전, 천추전을 짓고, 연침인 강녕전 일곽 뒤쪽에 교태전, 함원전, 자미당, 인지당, 청연루, 종회당, 송백당 등 후궁을 지었다. 동궁은 계조당과 자선당으로 구성되었으며, 후원에는 못을 파고 주변에 나무를 심고 취로정 등 정자를 세웠다.

3. 중건된 경복궁의 특징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은 1872년 중건되었다.
첫째, 창건 초기 및 임진왜란 직전의 경복궁보다 궁성의 규모나 주요 건물의 크기가 확대되었다.
둘째, 편전이 사정전 일곽 의 건물 곧, 만춘전, 사정전, 천추전이 나란히 남쪽으로 향하도록 배치되었으며, 왕의 침전인 강녕전은 주위에 연길당, 응지당 등 2채의 건물이 첨가되어 모두 5채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셋째, 홍례문에서 왕비의 침전이 교태전까지는 3문 3조 형식을 따르되 정전과 편전으로 구성되는 치조를 2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였고, 연조도 왕의 침전과 왕비의 침전을 2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앞뒤로 배치하였다. 궁궐 핵심부의 배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중요 건물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 부속 건물을 대칭으로 배치한 다음 전체를 행각으로 둘러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였다.
넷째, 근정전에서 교태전에 이르는 건물 배치는 태극도설(太極圖說) 및 천문도(天文圖)의 5제좌(五帝座)를 응용한 것이다. 교태전의 ‘교태’는 태극을 뜻하여 음과 양이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곳인 왕비의 침전에 어울린다. 교태전의 정문도 음양을 뜻하는 양의문(兩儀門)이다. 강녕전을 비롯한 5채의 건물도 오행을 상징하며, 강녕전의 정문 이름이 향오문(嚮五門)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천문도의 별자리와 관련지어 보면, 근정전은 북극성, 사정전 일곽의 3채는 3광(三光), 강녕전 등 5채는 5제좌에 대비해 볼 수 있다.

종묘와 창덕궁
1. 종묘

종묘는 태조4년(1395)창건되어 27대에 걸친 많은 왕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신 조선시대의 가장 존중받은 건물로 존재하였다.
처음 창건될 때의 종묘는 동당이실의 대실 7칸에 좌우 익실 2칸이 달린 정전과 공신당, 신문, 동문, 서문 이외에 신주 향관청이 있는 규모였다. 태종 때 남쪽 가산을 증축하고 세종 때 영녕전을 새로 지은 이후 인종 때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다. 명종 원년에 정전 4칸이 증축되었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광해군 때 재건되었다. 현종8년(1668) 영녕전의 협실을 늘리고 영조2년(1726) 때 정전의 신실을 4칸 늘렸으며, 헌종2년(1834) 정전의 신실을 4칸, 영녕전의 협실을 4칸 늘렸다.

1) 종묘의 건축적 특성
종묘의 특징은 먼저 입지와 좌향에 있다. 종묘는 경복궁에서 볼 때 그 왼쪽에 있으며 좌향은 <태조실록>에 임좌 병향이라고 하여 곧 궁궐과 같은 남향이다. 그러나 실제 현존하는 종묘는 경복궁으로 보아서는 동쪽에 치우친 곳에 자리하고, 좌향 또한 계좌 미향으로 오히려 남서방향이다. 고대 중국의 개념을 수용하지만 현실적인 지형 조건에 따라 이를 적절히 변형시켜 적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단순 질박한 각 신실이 옆으로 길게 연속되면서 종묘 정전의 전체 공간 구성은 압도적인 장엄함을 드러내는 점이 종묘가 갖는 건축적인 특성이다. 종묘 정전의 각 신실은 건축 구성의 기본 단위이다.
신실은 한 칸으로 되어 있으므로 결국 종묘 정전은 건물 한 칸 한 칸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다. 한 칸의 구성을 보면 우선 평면에서 제일 뒤에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그 앞에 제사 지낼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끝에 판문이 설치되어 문 밖으로 다시 툇간 1칸이 있다. 이것은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 등 각 구성 부재는 군더더기 장식을 거의 가미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서 웅장한 맛을 풍긴다. 각 신실은 모든 부분이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엄숙함을 갖고 구성되었으며 이 신실이 19칸으로 길게 연속되면서 종묘 정전의 전체 건축 형태가 구성된다. 정전은 19칸 신실이 있는 곳만 길이가 70m이며 좌우 협실과 월랑까지 하면 총길이가 101m에 달한다. 19칸의 정전은 기둥 간격이 모두 일정하고 또한 앞면 1칸이 개방되었기 때문에 20개의 똑같은 독립된 기둥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정전의 양끝은 협실로 이어지고 동서월랑이 직각으로 앞으로 꺽여서 정전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그 사이에 큼직한 박석들로 덮인 넓은 월대가 펼쳐져 있다.
정전 앞의 월대는 2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월대는 동서월랑 양끝에서부터 남쪽 신문 앞까지 정전 울타리를 가득 메운다. 그 크기는 동서 109m, 남북 69m이며, 월대 바닥은 한 변이 약 45cm 정도의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은 박석이 빽빽이 깔려 있다. 하월대 북쪽에는 한 단 높게 상월대가 있는데 역시 박석이 전체 바닥을 덮고 있다. 하월대와 상월대에는 정면 세 군데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가운데 계단은 월대 중앙에 남북으로 나 있는 신로(神路)와 통하는 것으로 이 길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신령만이 지나는 신성한 통로이다.
정전 일곽은 네모 반듯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영녕전은 신실 하나 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다. 정전과 영녕전 이외의 부속 건물로 칠사당(七祠堂)이 있으며, 공신당(功臣堂)은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제사 때 왕이 제사 준비를 하던 재실(齋室), 향축을 보관하는 향대청(香大廳), 종묘 대제 때 사용하는 제물과 기구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악공들이 대기하는 악공청(樂工廳) 등이 있다.

2. 종묘와 제례
종묘 건축은 정전의 길고 긴 건물과 그 앞의 넓은 월대를 특징으로 삼을 수 있는데 이는 종묘제례라는 독특한 제사를 치르기 위한 목적에 의한 것이었다.
우선 종묘 정전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남문은 신의 출입문이고, 동문은 제관이나 집례관의 출입, 서문은 악공과 그 밖의 종사원들의 출입문이다.
월대에서의 위치는 하월대 중앙 신로 동쪽에는 제관과 집례관들의 자리인데 그 중 초혼관인 왕의 자리는 판위라고 하여 따로 마련되었다. 신로의 서쪽은 일무를 추는 장소이며 하월대 남쪽 끝에 종묘악을 연주하는 악공의 자리로 헌가가 마련되었다. 상월대에는 역시 악공의 자리로 등가가 중앙에 놓이며 서쪽 끝에 음악을 지휘하는 협율랑 자리가 있고 동쪽에는 음복위가 있다. 하월대의 가장자리는 집사, 무관들의 자리이다. 정전의 양끝 동, 서월랑은 정전과 직각으로 꺽여서 정전 건물을 감싸고 있으며 특히 동월랑은 벽체를 설치하지 않아 제례종사원들의 활동을 편하게 한다.

2. 창덕궁

태종 5년(1404)에 창건된 창덕궁은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조성된 이궁(離宮)이었으며, 동관 대궐, 또는 동궐(東闕)이라고 하였다. 태종 때에 진선문과 금천교, 돈화문이 건립된다. 세종 때에 창덕궁 안에 집현전과 장서각을 새로 짓고, 세조 때 전각 이름을 붙였으며, 단종과 세조 때에 대대적인 개수공사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와 1608년 일부 소실되었으나 인조 25년(1647)에 중건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소실로 증축과 재건이 반복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의한 고의적인 훼손을 입었다. 1992년부터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경복궁은 정궁으로서 평탄한 대지에 궁궐 조영의 기본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왕권확립을 위한 권위와 정통성을 갖추기 위하여 계획되고 건설되었다. 이에 비해 창덕궁은 이궁이라는 성격상의 차이도 있고 삼국시대 이래로 궁실의 조영에서 적용되는 지형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여 시설하는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한국적인 궁궐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정궁인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중요한 궁궐로 사용된 것도 정치,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이러한 심리적 애착심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주변의 배치를 살피면 창덕궁의 동쪽에는 창경궁이 있고 북쪽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공동으로 사용된 후원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왕실에서 매우 중요시했던 종묘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정궁인 경복궁이 있다.
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동남쪽 모서리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지형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예부터 대문에서 내당(內堂)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는 기법과 일맥 상통하는 배치법이라 할 수 있다 . 금천교를 지나면 지금은 없는 건물이지만 진선문(進膳門)을 들어서야 인정문 앞뜰이 된다. 인정전 뜰은 방형으로 반듯한데 터를 잡았지만 인정전의 월대(月臺) 구성과 행각의 배치는 좌우가 대칭 형태가 아니다. 또 북쪽으로는 화단이 조성되고 담장을 두르고 있어, 공간의 분위기로는 정형적인 연출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비대칭적인 구성으로 공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인정전 동행각에 있는 광범문(廣範門)을 나서면 편전인 선정전의 외행각이 왼쪽에 늘어서 있다. 선정전 외행각의 남쪽에는 정원(政院), 대청(待廳), 대전장방(大殿長房), 사옹원(司饔院) 등의 기관들이 좌우로 배치된다. 또 선정전 북쪽으로는 지금은 없는 건물인 태화당(泰和堂) 등의 건물이 행랑으로 둘러싸여 배치된다. 경복궁에서는 근정전 북쪽에 편전인 사정전이 배치되지만 여기서는 인정전 동쪽에 인정전보다는 뒤로 물러서서 선정전이 배치되어 남향의 축은 인정전과 평행으로 설정된다.
선정전 동쪽에 있는 희정당과 대조전 일곽은 왕비가 거주하는 내전으로서, 특히 대조전은 엄격히 통제되는 궁궐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궁 밖에서 대조전까지 가려면 돈화문과 진선문,숙장문을 지나서부터는 접근하는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지만 어느 경우라도 5개 이상의 문은 더 통과해야 대조전 뜰에 닿을 수 있다.
인정전의 서쪽으로는 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선원전 일곽이 있고 그 남쪽으로는 정청(政廳),약방(藥房), 내각(內閣), 규장각(奎章閣), 봉모당(奉謨堂;왕실의 중요한 역대 서적을 보관하던 건물), 책고(冊庫)등 외전에 속한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김동욱,“궁궐 영조법식”, <토요문화강좌 제1집>, 궁중유물전시관, 1993.
김동욱,“궁궐의 건물들은 어떤 원리로 세웠을까”,<토요문화강좌제7집>,궁중유물전시관, 1999.
이강근, <경복궁>, 대원사, 1998.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