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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회화의 종류

궁중회화의 종류

궁중 회화는 궁중에서 특정한 용도를 위하여 제작한 그림을 가리킨다. 궁중은 조선시대 회화사 상 언제나 가장 중요한 수요자이며 후원자의 역할을 하였다. 궁중에서 왕의 역할과 취향은 궁중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곤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서화를 유난히 애호한 왕들로는 명종과 인조, 숙종과 영조, 정조 등이 있다.
성리학에서 그림이 가진 실용적 효용성과, 사람의 성정(性情)을 기르고 닦는데 부분적으로 유용하다는 공리적, 효용론적 회화관은 조선 사회에서 그림이 존재한 기반이 되었다. 그림의 사회적인 수요와 공급에 대처하기 위하여 궁중에는 궁중에 속한 직업화가인 화원(畵員)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도화서(圖畵署)가 설치되었다. 궁중의 그림은 대개 이들 도화서 화원들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1. 초상화

궁중회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초상화이다. 이것은 초상화가 유교적인 덕목을 반영하고, 회화의 공리성을 발휘하는데 가장 적합한 주제였던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도(功臣圖), 위대한 학문적인 업적을 이룬 대학자, 한 집안의 공을 이룬 선조 등 존경받을 만한 대상을 그 주제로 선택하였다. 초상화에서도 그려지는 대상에 따라 인물의 자세와 화면 형식, 복식, 표현기법 등이 다양하게 조절되었다.
어진은 삼국시대 이후 꾸준히 제작되었다. 어진 제작은 성자신손(聖子神孫)이 보은사상(報恩思想)에 근거한 추모의 예(禮)를 행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려 졌으며 동시에 조정 및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창업개조인 태조와 여러 선왕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궁중에서는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시는 진전(眞殿)을 설치하고 어진들을 모셨다. 조선의 어진 제작에 관한 기록은 많으나 현존하는 어진은 전주에 있는 태조어진과 영조어진, 철종의 융복어진, 고종과 순종의 어진 몇 점 등이 대표적이다.
어진 제작을 위하여 군왕 이하 여러 대신, 화원과 장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고 이를 전담하기 위하여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등 세심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어진은 대개 진채(眞彩)의 공필화로 제작되었다. 궁중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호사스러운 채색화였지만 조선시대의 경우 임금의 높은 인격과 품위,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그림은 자연스레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형태, 색조의 미묘한 조절로 기품이 넘치는 그림이 되었다.
공신도의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공복전신좌상이고 하나는 공복반신상이다. 대개 공복전신상이 좀더 화려한 채색과 공교한 세필로 이루어 졌고, 공복 반신상의 경우에는 전신상과 비슷한 화풍으로 된 작품이 있고, 좀 더 소략한 구성과 채색으로 된 작품이 있다. 공신들의 초상화는 대부분 6.25전쟁 때 불에 타서 안면만 겨우 보일 정도인데 강세황, 이명운, 조영진, 이치중, 김화진, 김노진, 정창성 등의 초상이 남아있다.

2. 장식화

궁중 회화는 민간의 회화에 비하여 화려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궁중 장식화는 가장 아름답고 화사한 그림이다.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는 왕의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경복궁의 근정전 어좌 뒤에 펼쳐져 있으며, 음양을 의미하는 달과 해,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봉우리를 도안화하여 그린 것이다. 벽화는 궁중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창경궁 희정당 벽화가 남아있다. 이 벽화는 1923년 경 희정당이 불이 난 뒤 재건하면서 그려진 것으로 <총석정절경도>, <외금강만물초도>와 길상적인 화조화, 화훼화 등을 그렸다. 병풍그림은 일상적인 공간을 장식하기 위하여 많이 그려졌다. 십장생도, 모란화, 연꽃, 화조화, 백수백복도, 책거리도, 문자도, 신선도 등이 애용되었으며, 결혼예식과 생일잔치 때에도 사용되었다.이들 병풍그림은 다채롭고도 화사한 구성으로 화려한 궁중취향을 반영하였다.

3. 궁중기록화

현존하는 궁중회화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각종 계기로 벌어진 궁중의 행사를 위하여 그려진 행사기록화이다. 그림으로 그려진 행사도 가운데에는 왕세자의 결혼, 왕과 왕대비의 생일잔치, 왕세자의 책례, 왕이 친림하여 주관한 행사들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행사기록화는 8폭, 10폭 병풍에 행사의 장면을 그린 본격적인 회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행사의 과정과 의례를 기록하기 위하여 제작된 책인 의궤(儀軌) 속에 그려진 간략한 의궤반차도가 있다. <화성능행도병>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행사도이며, 이외에 왕과 왕대비의 생일 잔치인 진연과 진찬 행사 장면을 담은 진연, 진찬도가 많이 그려졌다. 의궤 중에 그린 반차도는 병풍그림처럼 세필의 정교한 화풍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눈길을 끄는 작품들도 있다.
이와 같은 기록화들은 회화의 공리성과 효용성을 강조한 유학적 회화관을 가장 잘 반영한 그림으로 궁중 행사의 권위와 예를 강조하기 위한 장식화이며 실용화였다.
궁중기록화 중에는 궁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궁궐도를 빼놓을 수 없겠다. 그림의 종류상 계화(界畵)라고 불리우는 궁궐도는 국가의 안녕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4. 감상화

궁중은 가장 중요한 소장가이며 회화 후원자로서 독립적인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동기로 화원 또는 문인화가들에게 그림을 감식하고, 제작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왕이 궁중에 소장된 그림을 꺼내놓고 문신들에게 그림에 관한 시문을 짓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조선 초 유명한 수장가였던 안평대군은 고려시대의 왕실에서 전해져 오던 수장품을 그대로 이어받아 희귀한 중국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선조대왕의 <묵죽도>나 정조의 <파초도>에서 확인되듯이 왕들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때로는 화원들에게 명하여 특정한 화제를 주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그려진 이러한 그림들은 민간의 문인이나 직업화가들의 그림에 비하여 좀더 교훈적인 주제나 고답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독특한 성향을 유지하였다.

5. 회화식 지도

궁중회화 중 중요한 것의 하나는 회화식 지도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지도는 현대 서양적인 지도, 즉 기호식 지도와 달리 지형이나 지리적인 지식을 전달과 함께 그 지역의 인문 지리적인 지식을 포괄하는 지도였다.
지도란 통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궁중에서는 지리를 잘 아는 풍수가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문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파견하여 어떤 지역을 조사하고 지도로 그리게 하였다. 이처럼 화원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전통적인 지도는 통치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궁중에서 수없이 제작되었고, 최고의 화원들에 의하여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박은순, “궁중회화의 종류와 양식”, <특별문화강좌 제9집>, 궁중유물전시관,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