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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세시풍속

섣달그믐행사

연말에 행하는 대표적인 궁중 풍습으로는 섣달 그믐인 제석(除夕) 때의 풍습을 들 수 있다. 이 날 낮에 왕과 왕이, 종친, 궁중 관료, 외국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나례(儺禮), 처용놀이, 잡희(雜戱)를 하였고 밤에는 대규모 불꽃놀이를 벌였다. 불꽃놀이는 1년간 쌓인 잡귀를 모두 몰아 내고 새해에는 만복을 맞이하겠다는 주술적 의미와 여진이나 일본 등의 주변 민족에게 무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불꽃놀이가 끝난 후에는 종정도(從政圖), 작성도(作聖圖) 등의 주사위놀이나 격구를 하며 밤을 새웠는데, 왕은 주사위놀이를 하면서 돈을 내걸어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나례란 궁중과 한양 각처에 귀신을 잡아먹는 사자들을 보내 축귀(逐鬼)하는 가면놀이였다. 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라고도 한다. 섣달 세밑에 각 가정에서는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돈을 하고, 밤중에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린다. 집안에 있는 잡귀•사귀(邪鬼)를 모조리 몰아내고 정(淨:깨끗)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궁중에서는 대궐 안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한편, 벽사(僻邪)를 위하여 나례의식을 거행하였다. 궁(宮)이 깨끗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깨끗하여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나례의 주인공은 방상시(方相氏)라는 귀신 잡는 귀신이었다. 이 놀이는 중국에서 건너왔는데, 중국에서는 일 년에 세 번씩 방상시를 이용하여 귀신을 쫓는 나례를 행하였다. 섣달 그믐날의 궁중 나례는 보통 편전의 뜰에서 공연되었고 이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한양과 경기도 지역에서 징발된 자들이었다. 나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나례청이 있었으며, 후에는 관상감에서 담당하였다. 나례 후에는 처용놀이 또는 잡희(雜戱)라는 가면놀이를 공연하였다. 처용놀이는 처용의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놀이였다. 잡희는 일종의 마당극으로 사설과 노래, 연기를 함께 하였으며, 편전의 월대 위에서 공연하였다. 배우들은 시세를 풍자하는 가면과 복장을 하고, 춤과 함께 사설을 늘어놓았다. 사설은 대부분 양반 관료의 비리와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관람자들은 잡희를 보면서 재미를 느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여론 또한 알 수 있었다.
섣달 그믐의 절정은 대궐 후원에서 시행하는 불꽃놀이였다.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폭죽을 만들고 이를 쏘아 올리는 포대도 설치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화약과 포대 모두가 첨단 무기에 해당하였으므로 이 날의 불꽃놀이는 병조와 군기시(軍器寺)의 전문가들이 준비하였다.

정월풍속

조선시대의 명절은 사명절(四名節)을 꼽았는데, 설(正朝와 望日, 즉 보름), 단오, 동지, 그리고 왕의 탄일이다. 정월은 1년의 으뜸 달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의 달이다.

1. 정조(正朝; 정월 초하룻날 아침)

왕은 해뜨기 전 일어나 면복(冕服)에 평천관(平天冠)을 쓰고 정전 뜰에 나아가 사방에 절을 하는 사방배(四方拜) 예식을 하는데 이것은 나라의 평안과 풍작을 기원하는 자연숭배의 유풍이다.
다음은 선조 이후부터는 황단(皇壇)에 나아가, 망궐례(望闕禮)를 행한다. 이는 중국 자금성에 대한 요배로서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은혜에 대한 인사인데, 대한제국이 원구단(園丘壇)을 만들기 전까지 300년 가까이 계승된 의례이다. 황단자리는, 창덕궁의 경우 오늘날의 선원전(新璿源殿)터이다.
그리고 숙종 이후 선원전 전배(展拜)를 하였다. 왕의 전배는 왕비가 주관하여 선왕들의 초상화(御眞)를 모셔놓고 그분들의 탄일에 주다례(晝茶禮)를 올리는 풍속과는 별도이다. 왕에 따라 내궁(內宮)을 시켜 향만 피우게 하기도 하고 직접 전마루 위에서 사배를 올리기도 하였다.

2. 신년하례[조하(朝賀)]

먼저 왕의 정조문안(正朝問安)은 손윗분부터 대왕대비전, 왕대비전의 순서이고, 다음은 왕이 하례를 받는다. 지친(至親)은 안사랑 격인 희정당에서, 중신(重臣)은 편전인 선정전에서, 외신(外臣)은 정전인 인정전에서 왕에게 하례하였다. 이에 대한 답으로 음식을 내리는데, 각각 신분에 따라 흥복헌의 맞은편 행각, 인정전으로 이어지는 행각, 그 밖은 인정전 동서행각에서 상을 받았다.
하례 후에 축귀(逐鬼)를 위한 방포(放袍) 세발을 울렸다. 비빈들은 웃전에 정조 문안을 하였다.

3. 정월 초이튿날

초이튿날은 여성들의 잔칫날이었다. 종실, 벼슬아치 부인들(외명부) 및 궁녀들(내명부)의 정조문안(세배)이 있었다. 내전에서 왕과 왕대비께, 동서로 나누어 서서 곡배(曲拜)를 한다. 이때 사배(四拜)를 올리는데, 구령 대신 내시가 ‘박(拍)’으로 폈다 접었다 한다.

4. 상해일(上亥日)과 상자일(上子日)

궁녀들은 정월 첫 돗날[상해일(上亥日)] 날콩을 불렸다가 갈아서 자루에 담아 얼굴을 문지르면 희어진다는 속설로 두설세면(豆屑洗面)을 하였다.
또 첫 해일(亥日)과 첫 자일(子日)에는 궁중에서 왕 이하 궁녀에 이르기까지 주머니를 찼는데 해일에는 둥근 모양(엽낭), 자일에는 길게 네모난 비단 주머니였다. 주머니 속에는 콩을 볶아서 세 알씩을 붉은 종이에 싸서 넣었다. 이는 산 돼지(亥)나 쥐(子)가 모두 농작물의 피해를 입히는 짐승이므로 그 입을 지진다는 의미였다. 농가의 쥐불과도 취지는 같은데 별도로 이날 해가 지면 젊은 내시, 수 십 명이 횃불 행진을 하고 궁중 요소 요소를 돌면서 「돗의 부리 지진다」 「쥐 부리 걸린다」 외치고 다니는 풍속이 있었다.

정월대보름 행사[망일(望日, 上元)]

조선시대의 정월 대보름을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로 쳤다. 민간에서는 대보름날에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팔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를 하였다. 궁중에서도 일곱 가지 나물과 5곡밥, 이밖에 원소병(元宵餠)이라 일컫는 달떡과 약밥, 부름 및 약과를 먹는다. 고종은 덕수궁 시절 함녕전 대청에서 부름을 상품으로 하여 궁녀들로 하여금 윷놀이를 시켰다.
이 날 궁궐 후원에서는 승정원이 주관하는 내농작(內農作: 궐내에서 행하는 농사놀이) 행사를 하였다. 이 행사는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농사의 전 과정을 풀과 볏짚 또는 나무를 이용하여 조각, 형상화해야 하므로 수많은 기술자가 동원되었다.
내농작은 보통 <시경>의 ‘빈풍칠월’(豳風七月)편을 대본으로 하여 그 내용을 형상화하였다. ‘빈풍칠월’에는 새와 짐승, 밭갈이하는 지아비, 들밥을 나르는 지어미, 누에 치는 여자, 베 짜는 할멈 등이 등장한다, 내농작에서는 좌우로 편을 나누어 어느 쪽이 더 정교하게 이들의 모양을 제작했는지 경쟁한 후 이기는 쪽에 왕이 상을 내렸다. 내농작은 왕과 궁중 관료들에게 일 년 농사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농업에 관련된 또 다른 궐내 풍습으로는 기우제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년씩 계속되는 가뭄 피해 때문에 비를 기원하는 각종 기우제를 지냈다. 궐내 기우제는 경복궁의 경회루, 또는 창덕궁의 후원 등에서 행하였다. 도롱뇽을 단지에 담아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나무로 두드리면서 비를 내리면 풀어 주겠다는 합창을 하게 하였다. 이를 석척기우제(蜥蜴祈雨祭) 라 하는데, 도롱뇽을 비바람을 일으키는 용의 일종으로 여기고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농업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이 궁중의 도롱뇽 기우제로 표현되었다.

참고문헌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돌베개, 2002.
김용숙, “宮中의 歲時風俗”, <토요문화강좌 제2집>, 궁중유물전시관,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