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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문

산악무늬의 기원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산악이 많아 고대부터 한국인의 신앙 속에는 산악숭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神)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산정(山頂)은 대지의 중심으로서, 하늘과 통로를 이룰 수 있는 신성한 장소로서 숭상되어 왔고, 이러한 산악을 숭상하는 것은 한국인의 토속 자연물 숭배 사상이 뿌리를 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악무늬의 상징성
1. 장생, 참정
<궁중유물전시관> - 일월오악도 <궁중유물전시관> - 일월오악도

궁궐의 왕좌 뒤의 가리개에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를 그려 놓은 것은 장생의 뜻뿐만 아니라, 관리들의 순수하고 정당한 참정(參政)을 추구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해와 달, 창해, 산악 등은 모두 생명의 근원이다. 따라서 각종 공예품, 즉 도자기, 가구, 식기, 자수 등의 문양으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문방 기물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 절개·지조

임금의 복식인 12장복에는 12종의 문양 중에서 산이 수 놓여있다. 이는 중국에서 제왕의 십이장복의 장문 등부분에 곤륜산을 나타낸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로 산이 구름을 토(吐)하여 비와 이슬을 만들어 만물(萬物)에 혜택을 준다는 의미를 제왕의 존재에 비유하였는데, 높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였다. 또한, 산형(山形)은 부동(不動)의 형이니, 제왕으로서 매사에 가벼이 흔들림이 없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의미로 산악무늬는 조선조 흉배의 하단의 중앙과 양끝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3. 삼신산

부여 규암면에서 출토된 백제의 방형 문양전 중에서 산경문전(山景紋塼)은 앞쪽에 강물이 고요히 흐르고, 강가에는 육조시대(六朝時代) 산수도에서 나타나는 규각(圭角)의 뾰족뾰족한 괴암이 높고 낮게 솟았으며, 뒤로는 삼산형(三山形)의 연봉이 겹겹이 전개되었는데, 봉우리마다 소나무가 무성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 삼산형 산악은 삼산 신앙 등과 관련하여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백은희. 「조선조 상복의 흉배문양과 그 상징성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1994.
최희정. 「조선시대 흉배 문양을 응용한 자수표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1999.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한국문화상징사전1』. 서울: 두산동아,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