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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석문

돌의 상징성
1. 신격화

민속신앙에서 바위나 돌은 마을 수호신으로 섬겨졌다. 신격화된 돌은 산신(山神)·토신(土神)·산신(産神) 등의 상징이 되면서 토지의 풍요·사람과 동물의 다산과 번식·기후의 순조로움·국가의 전승과 평화 등을 보장해 준다고 여겨졌다. 특히 자식이 없는 집안에서는 기자암(祈子巖)에 기도를 드려 자식 중에서도 아들 낳기를 빌기도 하였다.

2. 군자·부처

유교에서는 돌을 군자의 품성과 연관시켰다. 조선시대 세조 때의 서화가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원예 관련서적인『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石은 굳고 곧은 덕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군자(君子)의 벗이 됨에 마땅하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한편 박인효(朴仁孝)의 가사(歌詞)를 보면, ‘한 말도 없는 바위 사귈 일도 없건마는 고모진태(古貌眞態)를 벗삼아 앉았으니 세상에 익자삼우(益者三友)를 사귈 줄 모르노라.’라고 되어 있다. 이는 세상에 바위처럼 아무 말도 없으면서 친밀하고 믿음직한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돌이나 바위가 지닌 구도자적인 함축성과 진리의 상징성이 중시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석 자체인 신석(神石)을 미륵불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3. 장수·고고(孤高)함

돌은 견고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시인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 중 셋째 수를 보면,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른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바위의 불변함을 노래한 것이다. 옛 사람들은 돌을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로 여겼고, 선비들은 신비한 모습과 장생의 상징으로 독립된 화재가 된 수석도(壽石圖)를 즐겨 그렸다.
도교에서는 신선의 모습을 ‘선풍도골(仙風道骨)’, 즉 바위에 견줄 만한 앙상한 골격을 지닌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바위나 돌은 자연물에서 신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돌무늬의 조형적 특징
1. 십장생문으로서의 돌

십장생을 소재로 한 조형물에서 돌은 주로 배경 역할을 담당하여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주위의 소나무·구름·사슴·거북·학 등에 비하면 그 표현 기법 또한 도식화되어 있다. 궁중의 십장생도를 보면 바위의 묘사에 화원풍(畫員風)의 청록산수법(靑綠山水法)이 즐겨 사용된 점을 살필 수 있다. 회화 외에도 조선시대의 도자기·나전공예·목공예·자수품·벼루 및 건축물 등에 십장생의 하나인 바위가 시문되어 있다.

2. 괴석도(怪石圖)

괴석도는 모양이 괴상하게 생긴 돌이나 바위 그림을 말하는데, 민화에서는 그 화의(畫意)에 따라 수석도(壽石圖)라고 불리기도 한다. 괴석도에서 돌은 주로 구멍 뚫린 태호석(太湖石, 중국 태호(太湖)에서 나는 기형(奇形)의 석회암) 형태가 묘사되었다. 돌의 피부와 주름은 예스러움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기나긴 세월 동안에 자연의 섭리로 이루어진 수석의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화풍은 먹으로 그리는 수묵화풍과 극채색(極彩色)인 민화풍(民怜風)의 두 종류가 있다. 수묵화풍 괴석도는 문인화의 소재로서 중국 북송대에는 고목(古木)과 함께 그려지다가 원대에 이르러 독립된 화재(畫材)로 등장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괴석도를 즐겼는데 허련(許鍊), 조윤형(曺允亨), 정학교(丁學敎), 박태희(朴台熙), 강진희(姜璡熙)등이 주로 그렸다. 이렇게 선비들이 돌을 사랑한 이유는 돌에는 대자연이 일깨워주는 진리가 담겨 있어 자연의 운행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3. 산수문으로서의 돌
<궁중유물전시관> <궁중유물전시관>

한국의 정통 산수화에서는 자연풍경을 사람 눈에 비치는 대로 모방해서 그리지 않았다. 산수화에서 돌은 자연 속에 스며 있는 기운으로 표현되었다. 강세황의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에서 바위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그 거대함으로부터의 감명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민화적 산수화에서 바위는 불꽃형·네모형·세모형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밖에 나전공예품에서는 나전으로 단순하게 시문된 돌무늬를 살필 수 있다. 궁중유물전시관 소장 유물인 <나전칠연상(螺鈿漆硯床)>에 시문된 바위는 자개조각을 작게 끊어 이어 표현하였는데, 매우 기하적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윤열수. 『민화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디자인하우스, 1995.
장준근. 『수석』. 1989; 서울: 대원사, 2002.
조자룡·김철순. 『민화: 조선시대 민화』上. 서울: 웅진출판, 1992.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한국문화상징사전』. 서울: 두산동아, 1992.

<논문>
권윤주. 「돌(石)의 회화적 의미와 표현 : 조선시대 회화작품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