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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천(一利川)전투

시대 : 고려
시기 : 936년(태조 19) 9월
전투지역 : 경북
전쟁상대국 : 후백제
상세내용

936년 9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의 일리천에서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대파한 전투.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은 935년이 되면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더욱이 이해 3월 후백제의 내분으로 견훤은 장남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제 실질적으로 후삼국통일에서 남은 것은 정치적·군사적으로 후백제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견훤은 자신을 유폐시킨 신검을 응징해 줄 것을 왕건에게 요청하였고, 왕건은 마침내 군사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해 9월 왕건은 삼군을 거느리고 천안부에 가서 병력을 합세시켜 일선군으로 나아갔고, 후백제의 신검도 고려군을 맞아 대항하였다.

일리천은 지금의 선산을 관통하여 흐르는 낙동강 지류이다. 왕건으로서는 이곳은 신라와 가까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낙동강의 수운을 이용해 쉽게 병력과 물자를 이동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곳이었다.


마침내 고려와 후백제의 양군은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고려의 군사수는 전부 8만7천5백 명으로 왕건은 부대를 몇 개의 제대로 구분하여 지휘하게 하고 자신은 항복해온 견훤과 함께 좌익을 직접 지휘하였다. 이와 같이 군사를 정비하여 북을 울리면서 전진하니 그 기세가 상대를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를 본 후백제 좌장군 효봉, 덕술, 애술, 명길 등 4명이 투구를 벗고 창을 던져 버린 다음 전의 왕 견훤이 타고 섰는 말 앞에 와서 항복하였다. 이에 적측의 사기가 저하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왕건이 효봉 등을 위로하고 신검이 있는 곳을 물었다. 효봉 등이 말하기를 “신검이 중군에 있으니 좌우로 들여치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건이 대장군 공훤에게 명령하여 곧추 적측의 중군을 향하여 삼군과 함께 일제히 나가면서 맹렬하게 공격하니 적병이 크게 패하였다. 고려군은 계속 적을 추격하여 충남 황산까지 이르렀다가 탄령을 넘어 마성에 주둔하였다. 이에 신검은 자기 아우인 양검과 용검과 함께 문무 관료들을 데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건은 양검과 용검은 진주로 귀양을 보냈다가 얼마 후에 죽였고, 신검은 그가 아비의 자리를 참람하게 차지한 것이 남의 위협에 의한 것으로서 죄가 두 아우보다는 경할뿐더러 항복해왔다 하여 특별히 죽이지 않고 벼슬을 주었다. 이에 견훤은 근심과 번민으로 등창이 나서 수일 만에 황산 절간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