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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어마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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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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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선전관작대

가후선전관은 임금의 행차 때 수레 뒤를 따르던 선전관청의 무관직을 말한다.

화성행차 때 동원된 가후선전관은 이상일, 이유엽, 유득원 조달수, 이경덕,이형겸 등이다.

무예청총수

무예청은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왕의 호위를 맡았던 정예부대로,
무예청 총수는 조총을 메고서 좌, 우 40명씩으로 나누어 왕을 호위하였다.

별군직작대

조선 시대 별군직청(別軍職廳)에 딸린 무관 벼슬로, 왕의 호위와 벼슬아치 적간(摘奸)의 일을 맡았다.

별수가장관작대

가마의 관리책임을 맡은 장교이다.

승전선전관작대

조선시대 선전관청의 당직 선전관으로, 그 날의 왕명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선전관은 8명이며, 체아직(遞兒職)의 녹(祿)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정식으로 관아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선전관이 정직(正職)이 되면서 선전관청이 설치되었다.
『속대전(續大典)』에는 정3품 아문으로 되어 있고 『대전통편』에는 형명(形名), 계라(啓螺), 시위(侍衛), 전명(傳命), 부신(符信)의 출납을 장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어갑주마

임금이 사용할 갑옷과 투구를 실은 말이다.

어승인마

임금의 인을 실은 말이다.

자궁가교인마

자궁인 혜경궁 홍씨가 탄 가교를 끌고 가는 말이다.

차지교련관

차지는 담당이라는 의미로, 차지 교련관은 담당교련관을 말한다.
교련관은 조선후기 각 군영에서 군사훈련을 담당하였던 군관직이다.

협연군

조선후기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임금의 수레인 연을 호위했던 군사이다.

성내 거동에는 80명~100명, 성외 거동에는 200명이 서로 교대로 호위하였다.
1777년(정조 1)부터는 성내 거둥에는 200명, 성외 거둥에는 정군 300~400명을 쓰고 예비군 200명으로 간간이 교대하도록 하였다.
해마다 조총 사격술을 시재하여 궁중에서 무명과 베를 상으로 지급했으며 30개월 이상 근무한 자에게는 별영에서 군료 9말을 지급하였다.
한편 연의 호위 외에 기패관의 영솔하에 20명씩 훈련도감의 군향색에 숙직하였다.

화성행차 때 동원된 총 인원은 179명 으로, [정군 문의대 등 80명], [여군 송준흥 등 50명], [서자지 김리원 등 2명], [우구와 철롱 담당 이복형 등 10명], [짐꾼 윤은창 등 15명], [군량직 전재풍 등 4명], [복마군 박지영 등 18명] 이다.